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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관습이 경쟁하며 공진화했던 ‘한국 뉴웨이브’
사실과 관습이 경쟁하며 공진화했던 ‘한국 뉴웨이브’
  • 김재호
  • 승인 2020.12.3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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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한국 뉴웨이브 영화』 이효인 지음 | 박이정 | 360쪽

새로운 공간, 인물, 사건의 제시
법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진 한국영화들
하지만 뉴웨이브의 밈은 사라져

이효인 경희대 교수(연극영화학과)가 1975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 영화들의 흐름을 살펴본다. 이 교수가 내린 결론은 “2000년대에 와서야 한국근대영화가 끝났다는 것”이다. 영화사의 흐름을 ‘뉴웨이브’라는 키워드로 살펴보는 것은 기록의 차원을 넘어 현재 영화들에 남아 있는 문화적 유전자인 ‘밈’을 들여다본다는 차원에서 중요하다. ‘뉴웨이브’는 원래 195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운동에서 유래했다. 

『한국 뉴웨이브 영화』는 1부에서 먼저 뉴웨이브의 맥락을 살펴본 후, 뉴웨이브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감독들을 논한다. 그리고 한국 뉴웨이브 영화를 만들었던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장선우 감독들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2부는 ▷ 1장 영상시대 ▷ 2장 독립영화 운동의 전개과정 ▷ 3장 독립영화의 미학으로 쓰였다. 

1984년 영화법 5차 개정에 의해서야 비로서 영화사 설립이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이효인 교수는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였고, ‘영화진흥법’이 탄생한 1990년대를 한국영화의 부흥기라고 불렀다. 그래도 한국영화는 도약의 발판을 조금씩 쌓아갔다. 여성의 수난과 계층 간의 갈등이 암묵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과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회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암흑기 1970년대를 지나다

이 교수는 “1985년 영화법 개정과 완화된 검열 환경은 뉴웨이브 영화의 탄생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라며 “한국영화의 급성장은 1993년 삼성과 대우 등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과 로맨틱 코미디 영화 「결혼 이야기」(김의석, 1992)와 그 정반대편에 위치한 일종의 민족주의 영화 「서편제」(임권택, 1993)의 성공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적었다. 1996년에 창설된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한국영화 뉴웨이브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교수는 한국영화 뉴웨이브가 지닌 ‘밈’은 2000년대 들어 쇠퇴했다고 본다. 뉴웨이브 영화들은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1990)에서처럼 사실주의적 표현과 흥행을 염두에 둔 관습적 설정이 서로 경쟁하며 공진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2000년대에는 더 잔인해지고 난잡한 요소들로 나아가며 진화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과연 뉴웨이브란 무엇일까? 이 교수는 영화가 속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사건성’”을 강조했다. 물론 영화의 형식과 양식, 운동과 독특한 경향성 역시 빼놓을 순 없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진 못했지만, 1970년대 한국영화들과 단절을 도모하며 영화적 이상을 실천하고자 했던 흐름이 바로 뉴웨이브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교수는 “한국 뉴웨이브는 작품, 활동(영화운동)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체제’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하는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 감독이다. 특히 박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를 꼽았다. 그 이유는 “그간 한국영화에서 없었던 공간, 인물, 사건의 제시” 때문이다. 

이후에 한국영화사 최초로 영화에 대한 영화를 그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1989), 민감한 주제였던 빨치산과 베트남전을 다룬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89), 「하얀 전쟁」(1992), 성과 냉소, 위악을 그린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등이 책에 소개됐다. 이 교수는 장선우 감독의 작품이 뉴웨이브의 종말을 각인시켰다고 평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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