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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유의 공무원’이 아니라 개념 창조하는 무기
철학, ‘사유의 공무원’이 아니라 개념 창조하는 무기
  • 김재호
  • 승인 2020.12.31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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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432쪽

속도라는 벡터를 출현시키는 무기
리좀적 소수정치론이 사상의 나침반
들뢰즈의 행동학은 생태정치학

‘들뢰즈’ 하면 차이와 유목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본과 과학기술이 점령한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들뢰즈. 그의 실천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개념무기들』이다. 고전적이며 영원할 질문인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들뢰즈는 개념을 창조해내는 활동으로서 철학의 실천을 강조한다. 과학은 경험 속 차이들에서 동일성이라는 함수를 찾아낸다. 예술은 감각의 기념비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개념이라는 것은 절대 권력의 도구가 아니다. 소수정치를 강조하는 들뢰즈의 철학적 개념은 자유로운 활동으로서 ‘무기’다. 무기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라는 고유한 벡터를 출현시키는 행동의 기계로서 작용한다. 들뢰즈는 철학적 개념이 ‘무기’로서 배치되길 바란다. 그래서 ‘개념무기들’이 탄생한다. 무기는 자유롭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국가에 복무하는 ‘사유의 공무원’이 아니라 민중의 도래를 촉진하는 전사로서 활약한다.  

들뢰즈를 25년간 연구해온 조정환 저자. 그는 이번 책의 서문에서 “실질적 포섭의 심화와 통합된 세계자본주의는 변혁의 힘을 이제 무엇보다도 인간 다중과 비인간 다중에서 찾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요구에 응답함에 있어 네그리의 다중자율의 삶정치론이나 과타리의 생태론적 기계정치론, 그리고 들뢰즈의 리좀적 소수정치론은 중요한 사상적 나침반이었다”고 밝혔다. 조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운동을 연구하는데 있어 들뢰즈가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는 참조점”이었다고 적었다.

들뢰즈는 철학의 본질이 개념을 창조하는 실천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리좀적 소수정치론과 대안운동

들뢰즈의 사상은 정치의 영역을 넘어 △ 문학예술(‘소수문학론’) △ 역사(‘대중독재론’) △ 신학(‘해방신학론’) △ 철학(존재론과 형이상학) △ 영화 등에 영향을 끼쳤다. 조 저자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행동학(ethology)로 읽었듯이 들뢰즈의 철학을 행동학으로 독해한다. 행동학은 생태정치학의 다른 이름이다. 『개념무기들』의 첫 장은 들뢰즈의 문장인 “행동학은 각 사물을 특정짓는 빠름과 느림의 관계들과, 정동하고 정동되는 능력들에 대한 탐구이다”가 적혀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속도의 관계들과 그 속도가 가능할 수 있는 능력들이다. 

조 저자는 갈무리 출판사와 저자 인터뷰에서 들뢰즈의 행동학을 좀더 쉽게 설명했다. 그는 “들뢰즈의 행동학은 운동학과 동역학이 씨줄(위도)과 날줄(경도)로 얽히는 것”이라며 “객체의 내포역량(잠재력)을 살피는 것이 동역학이며 그 내포역량의 이동과 운동을 살피는 것이 운동학”이라고 답했다. 예를 들어, 권력정치는 동역학으로서 경도를, 소수정치는 운동학으로서 위도를 뜻한다. 한 집단의 구성원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잠재력(동역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소수정치)을 떠올리면 된다. 조 저자는 “운동학적 개념들은 동역학적 개념들과의 관계 속에 들어올 때 비로소 도구이기를 멈추고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들뢰즈와 어떻게 연결될까? 조 저자는 “자본주의의 지리적 장악, 사회적 지배, 인지적 통제가 계속되는 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된다고 해도 이 재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들뢰즈는 이러한 기술주의적 방안과는 달리 탈영토화, 도주선, 소수정치 등의 개념을 통해서 세계자본주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리좀, 블록화, 친구 등의 개념을 통해서 도주하는 힘들의 공통되기를 강조합니다”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편해야 하는 것이다. 

『개념무기들』은 들뢰즈의 기계론, 시간론, 정동론, 주체론, 정동론, 속도론을 검토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새로운 대안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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