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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계 北人의 사상적 원류 밝혀
남인계 北人의 사상적 원류 밝혀
  • 신병주 규장각
  • 승인 2004.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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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조선후기 정치사상연구』(정호훈 지음, 혜안 刊, 2004, 384쪽)

▲ © yes24
이 책은 조선후기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17세기 북인계 남인의 형성과정과 중심 인물들의 정치사상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논저다. 저자는 군주의 권위와 공론을 강조하는 정치적 사고와, 刑政을 중시하는 한편 남인들의 仁政을 소화하면서 조선후기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한 북인들의 사상을 계승한 북인계 남인들의 정치사상을 다뤘다.

서론부의 1, 2장에 이어 3장에서는 17세기 전반 북인계 남인으로 韓百謙과 李 光을 들고 '동국지리지'와 '지봉유설'이 각각 국가와 군주의 지위를 중시하는 인식의 귀결이라는 점과 실용학의 체계를 세운 점에서 북인의 사상과 접목됨을 논증했다. 4장과 5장에서는 유형원을 중심으로 국가 개혁론을, 윤휴를 중심으로 경전 해석의 변화와 부국강병론을 언급했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북인계 남인'이라고 설정한 인물군이 북인으로서의 공유의식과 사상적 공통점이 주 요소가 돼야 하는데, 개별 인물 중심으로 사상과 사회경제책의 특징을 다루고 그것이 북인의 사상과 접목되는 부분을 언급함으로써 '북인계 남인'의 범주가 명확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또한 부분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18세기의 대표적 북인계 남인 許穆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점이 아쉽다. 허목의 도가적 취향은 북인 학문의 원류인 서경덕이나 조식의 사상과 접목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러한 흐름도 강조됐으면 한다.

즉 조선후기에 전개되는 三敎會通의 절충적, 포용적 경향과 북인 사상과의 연결고리를 찾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외에 북인의 학문적 원류에 대해 '북인들은 唯氣論 혹은 氣를 중시하는 사상에 기초해 학문체계를 세우고 있었다'고 했는데 서경덕은 이에 해당하지만 조식을 유기론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이들이 추구했던 사회경제정책은 國富의 증대, 군사력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마련됐다고 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15세기 훈구파에게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이들이 추구한 부국강병론이 15세기의 그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지의 설명도 부족한 감이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책은 조선후기 정치사, 사상사 연구에서 소외됐던 북인의 사상적 원류와 함께 이들의 사상이 단절되지 않고 계승된 상황을 체계적으로 밝힘으로써 조선후기 사상사를 보다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했다. 북인은 인조반정이후 정치적으로는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지만 이들의 사상이 '북인계 남인' 학자들에 의해 계승된 면모가 확인됐다.

특히 주자성리학의 정치사상과는 다른 원리와 방법, 다른 성격을 지닌 새로운 정치사상이 대두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발견은 조선후기 백과전서적인 실용적 학풍이나 삼교회통적 사상의 대두를 설명하는 데도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는 기존의 주자성리학 중심의 연구 이외에 비주류 사상가들의 연구가 보다 폭넓게 이뤄질 때 조선사회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을 체계적이고 실증적으로 논증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신병주 / 서울대 규장각·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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