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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키지 않았던 이슬람 친구의 기억
침을 삼키지 않았던 이슬람 친구의 기억
  • 정규영 조선대
  • 승인 2004.05.21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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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필자가 이집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다. 때는 이슬람 력으로 9번째 달, 즉 아랍어로 ‘라마단 달’이라고 불리는 이른 바 ‘단식의 달’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마단 한 달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뜬 이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는 먹고 마시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두운 새벽에 아침을 먹는 것이 보통이다. 새벽에 아침을 먹지 못하면 그 날의 단식을 이행하기가 매우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대학원 학생들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강의를 하시는 연로한 교수님은 다른 때와 달리 힘들어 보였다. 말씀을 하실 때마다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작은 거품이 일었고, 곧 입 가장 자리에 더 큰 거품 덩어리가 부풀어 올랐다. 선생님한테는 죄송하지만 ‘게 거품’을 문다는 것이 아마도 저런 것 일테지…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강의는 계속됐고, 덥지만 조용한 강의실에서 나는 나대로 더위에 지쳐 나른해지는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더니 “퇴!” 하고 침을 뱉는다. 조용한 강의실 속에서 그 소리는 꽤나 크게 들렸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침 뱉는 행동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나의 긴장된 시선은 이제 번갈아가며 선생님의 입술과 그 친구의 손수건에 떨어졌다. 선생님의 거품 방울이 커갈수록 그 친구의 손수건은 더 축축하게 침에 젖었고 마침내 쥐어짜면 침이 뚝뚝 떨어질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나는 점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그의 버릇없는(?)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선생님은 오히려 그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수업이 끝난 후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친구는 라마단 달이어서 침을 삼키지 않았노라고 당당하게 대답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종교적 계율을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지키는 그들의 신실함 앞에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존경심이 내 마음 속에서 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슬람 세계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 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지금,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하는 이슬람 세계와 아랍세계 특히, 미국과 싸우고 있는 이라크는 어둡고 가난하며, 폭력적이고 광신적이라고 한다. 과연 그랬던가. 과연 일부 언론의 보도가 아랍 이슬람 세계의 진면목인가. 이슬람 세계에서의 오랜 체류를 경험에 비춰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항변하고 싶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범죄를 했을 때 그의 종교를 언급하면서 비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연히 무슬림이라면 왜 언제나 이슬람을 언급하고 비난하는가. 온 몸과 머리를 검은 옷으로 가린 수녀를 보고 우리는 순결하다고 칭찬은 할지언정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슬림 여성들이 얼굴과 몸을 가리면 왜 여성차별이고, 왜 여성학대라고 주장하는가. 대다수의 무슬림들에게 이런 것들은 매우 불공평한 처사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국군과 외국군들에 대해 이라크 인들이 폭탄을 터뜨리고 총격을 가하는 등 항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이 우방인 우리로서는 폭력적인 이라크 인들을 이해하기 힘들고 때로는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비난에 동참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잠깐만 다시 생각해보자. 일제 치하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윤봉길 의사를 범죄자로 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이라크를 볼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는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이웃한 나라들-예컨대 중국과 일본-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슬람 세계나 아프리카 등은 우리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아랍 이슬람 세계는 오늘날 서유럽의 르네상스와 미국의 부흥에 기여한 역사적 공헌이 있다.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유럽에 전달한 것이 이슬람 세계이니, 궁극적으로는 우리도 아랍이슬람 세계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랍인들의 계산법과 아라비아 숫자는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분이 돼있다. 근대화 시기에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 병원은 사실 아랍 이슬람 세계가 그 기원이다. 중국이 비단 종이를 처음 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종이를 대중화해 일대 지식혁명을 가져오게 한 공로자는 바로 아랍인들이 아닌가. 오늘날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바로 이 이슬람 문명의 본산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눈, 우리의 귀를 가지고 제대로 아랍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자. 남의 눈, 남의 귀를 통해 보고 듣던 구태는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규영 / 조선대 이집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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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쟁이 2004-05-23 02:48:32
다시 읽어보니 제가 얼핏보고 독해를 잘못했네요.
(안중근, 윤봉길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신 적도 없는데 말이죠.)
괜한 군더더기를 붙였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쟁이 2004-05-23 02:44:22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님의 주장처럼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중근과 윤봉길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원흉만 제거하려고 했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요. 물론 이라크인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미국의 짐승같은 만행 앞에 무슨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중근이나 윤봉길처럼 이등박문이나 일왕만 지목해서 처단하려고 했던 지사정신을 테러리즘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사상가이자 저항운동가라고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