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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아라, 그게 바로 공부다’
‘잘 놀아라, 그게 바로 공부다’
  • 최재목 영남대 교수
  • 승인 2004.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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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최재목 영남대 교수 © 영남대
며칠 전 나는 우리 대학에서 매 학기 개최되는 ‘교수와의 대화’ 프로그램에서 특강을 했다. 강의 제목이 ‘잘 놀아라, 그게 바로 공부다’였고, 부제가 ‘인문학의 공부론’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인문학적 공부론의 핵심은 이렇다. 삶은 그대로 수행이고 공부다. 또한 삶은 바로 놀이이고 축제다. 공부는 당연히 놀이이고 축제여야 한다. 이왕 놀 바에는 ‘잘’ 놀아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제대로 놀고 있는가?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는 눈만 뜨면 ‘공부 좀 해라!’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그래도 하나같이 공부가 어렵다고들 한다. 인문학인들 예외는 아니다.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흥미도 줄어들고 있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공부하라, 공부하라’고 강요한들 별 뾰족한 부흥책도 없다.

이제 나는 차라리 이렇게 관점을 바꾸고자 한다. 삶을 곱씹어 보라. 모두 내 것 아닌 ‘것’과 ‘일’이 없다. 모든 것이 바로 내 것이 될 때 절실한 의미를 얻는다. 모든 것이 나의 절실한 의미임을 자각한다면, 내가 하는 모든 것과 일에 시선이 쏠리고 손길이 닿으며, 신바람이 나고 즐겁고 기쁠 것이다. 삶과 공부는 모두 놀이와 축제로 바뀌게 된다.

삶과 공부가 ‘놀이’와 ‘축제’라는 의미를 망각할 때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고단한 일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축제와 놀이가 없는 일은 참혹하고 무의미하다. 이것은 건강한 정신의 상실, 정신적 빈곤을 의미한다.

 

삶을 놀이와 축제로 자각한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하고 놀아야 재미있을지(즉 놀이의 대상과 방법)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유쾌해지며, 창의적 의미를 갖게 된다. 영어공부를 영어놀이, 철학공부를 철학놀이라고 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흥미 있게 될 것인가?

인문학은 세계 속에서 사람임·사람다움·사람됨의 무늬(文/紋)를 탐구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해 가는 학문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품성과 품격의 함양이라는 기본 바탕 위에 교양을 두루 섭렵해(遊於藝), 교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궁극적 목표다. 인문학의 공부가 ‘배우고 익히는 기쁨(學說)’,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朋樂)’의 조화를 얻을 수 없다면 맹목적일 뿐만 아니라 공허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는가? 첫째, 마치 바둑이나 장기, 게임 등에도 급수가 있듯이 ‘잘’ 놀 수 있는 전략을 터득해야 한다. 이 전략은 ‘생긴(타고 난) 대로’ 충분히 놀아낼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의 잠재적 능력(개성)=‘꼴의 값’을 제대로 아는 데서 출발한다. ‘꼴값’을 제대로 하는 삶은 만족스럽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

둘째, 노는 데에는 線이 있어야 한다. 선 위에서 놀아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놀아도 룰을 넘어섬이 없다(從心所欲不踰矩)면 좋다. 쾌락·욕망·재화의 끼(酒色財氣)에 편향·매몰되지 않고 보다 나은 삶의 가치들(예컨대, 생명 가치, 진선미, 보편적인 것, 성스러움 등)을 지향하는 자신의 철학이 있으면 된다.

셋째, 제대로 놀려면 노는 ‘행선지’ 즉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흘러넘치는 知와 정보, 각양각색·복잡다단한 길 위에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가능 여하에 따라 멋지게 살았다=잘 놀았다의 여부가 결정된다.

넷째, 잘 놀기 위해서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노는 환경, 장소의 취사선택, 그리고 빈곤과 추악에서 기사회생할 정신과 혜안의 절차탁마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칠전팔기, 백척간두진일보의 정신과 기개도 있다.

아무렇게나, 막 가는 식으로, 즉흥적으로 노는 것은 허송세월일 뿐이며 그냥 장난치거나 까부는 것에 불과하다. 이럴 때는 ‘놀고 있네’라는 비꼬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논다’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만 좁혀서 해석하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말의 ‘놀다’와 한자의 놀 ‘유(遊)’ 자는 삶 혹은 공부 그 자체라고 할 만큼 풍요롭고 깊은 의미로 채워져 있고, 당연히 긍정적, 부정적 두 가지 뜻이 공존해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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