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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천주교인이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 이진현
  • 승인 2020.12.22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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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특집

신앙심이 외래 지식 탐구욕보다 앞서
체포와 심문에도 굳건한 신앙
다른 종교와 전통문화 존중해야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성인은 만 25세에 순교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두드러진 행적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 사제로서 활동한 기간은 1년 1개월, 그나마 오래고 고된 항해와 육로 여정, 조정의 감시와 박해를 피한 은둔 생활, 체포되어 순교하기까지의 옥살이 등 갖가지 제약때문에 실제 사목활동은 6개월에 불과하였다. 사형을 앞두고 조선 신자들에게 보낸 한글 회유문은 “신자들 보아라”고 반말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의 신앙적 진실성과 겸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더라도 신자들을 하대하는 문체는 유교사회의 신분질서에 익숙한 한 조선 청년이 가톨릭의 전통적 성직자 위계의식까지 주입 받아 당대의 권위주의적 심성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한역서학서를 통하지 않고 서양 언어를 직접 익혀 서구 지식에 접근한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와 지도제작법까지 익힌 그의 지적 탁월성으로 조선 조정에 협력했다면 더 이른 서구와의 교류, 근대 문물 도입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3D로 복원된 성 김대건 신부 흉상.
사진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정통주의 입장 견지해

그러나 그가 배운 지식은 서구의 최신 사상이 아니라 근대의 조류를 배척하는 정통주의 가톨릭 교리였다. 김대건을 가르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회를 되살리고 지켜야 한다는 복고주의적 호교론에 기울어 있었다. 해산당했다가 돌아온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도 이러한 가톨릭 정통주의 입장을 견지했다. 따라서 김대건 신부를 근대적 지식인으로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점은 같이 서양어를 익혀 신학을 공부한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삶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김대건 신부보다 오래 활동했지만 가톨릭 교리 전파 외에 서구의 최신 지식 보급과 관련하여 어떠한 영향도 끼친 적이 없다. 따라서 둘 다 자신들의 신앙적 충실성이 최신의 외래 지식 탐구욕보다 우선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명백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성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그리고 희년으로 기념할 만큼 김대건 신부가 대단한 인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비가톨릭인들이라면 ‘당신들이 추종하는 인물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단순히 최초의 한국인 사제이자 순교자라는 신원 이상의 더 깊은 영성적 의미는 없을까?

먼저 그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할 때 주고받은 대화에서 그의 굳건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관장이 저에게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어찌하여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천주교를 믿는 거요? 그 교를 버리시오.’라고 심문하기에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믿는 거요. 우리 종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주오. 나는 배교하기를 거부하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옥중서한, 1846.8.26)

김대건 성인은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천주를 아비이자 주인인 ‘임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고난 한가운데에서도 천주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안녕으로 이끄신다고 굳게 믿고 온갖 난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헤쳐나갔다. 뗏목과 다를 바 없는 작은 배로 서해를 가로지를 때 폭풍우로 침몰될 위기 속에서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기에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라는 말로 모두를 안심시켜 상해에 도착한 일화도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혹독한 문초를 가하는 관장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고문을 받게 해 준 데 대해 감사하오. 내 하느님께서 당신을 더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여 그 은혜를 갚아 주기를 기원하오"라는 말로 적대자까지 배려하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었다.

김대건 성인은 외래의 새로운 지식보다는
근대의 조류를 배척하는 가톨릭 정통 교리를 우선했다. 사진 = 위키백과

김대건 성인의 영석적 의미

그리스도교 신앙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가치, 신념,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행위, 더구나 타인과 공동선을 위해 비폭력 무저항으로 피흘림을 감수하는 희생은 고귀하고 또 존경받을 만하다. 그래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된 것과 더불어 보편교회 신앙의 모범이라는 공감대 안에서 진행된다. 이 공감대라는 취지가 비가톨릭·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순교가 지역 고유의 종교적·문화적 가치와의 충돌로 벌어진 것이라면, 그들의 순교가 그리스도교 신앙 수호와 증거라는 이름으로 나름대로 탄탄하고 정교한 윤리 체계를 지닌 전통문화나 민족정서에 상처를 준 것에서 비롯됐다면, 그 신앙의 배타성이 오히려 증오와 대결을 초래한 것이라면 과연 전세계 교회의 공감을 넘어 인류애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는 왜 가는 곳마다 피를 부르는가?” 라는 어느 스님의 질문에 단순히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따르는 신앙의 증거이기 때문에, 피로써 희생하는 사랑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최근의 시복·시성 운동이 순교의 영광이란 구호 아래 벌이는 교세 과시 혹은 확장 수단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한국교회 스스로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부디 한국 가톨릭 교회가 다른 종교와 전통문화, 민족정서를 외면하지 않고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는 성숙한 순교자 영성이 심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진현 라파엘 신부·서강대 신학연구소 대우교수

천주교 예수회 사제로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신학대학원에 재직 중이다. 이 글은 한국가톨릭교회와 예수회 공식 입장인 아닌 필자의 개인 의견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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