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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고분의 과거와 현재
고구려 벽화고분의 과거와 현재
  • 교수신문
  • 승인 2020.12.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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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태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616쪽

동아시아 역사문화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생애의 학문적 화두로 삼아 써내려간

엄밀하고 흥미로운 고구려 벽화고분 연대기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유구한 시간을 지켜온 고구려 벽화고분은 한국 고대 예술문화의 원형 연구에서 더없이 중요한 유적이자 역사문화자료다. 특히 고분 안에 그려진 벽화는 당시 생활사와 풍속ㆍ사회제도ㆍ인간관계ㆍ예술세계ㆍ신앙관ㆍ국제교류ㆍ과학기술 업적 등 고구려와 고구려인의 전모를 품은 문화적 결정체다.

이 책은 고구려 벽화고분 연구의 권위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202010월 현재까지 조사ㆍ보고된 126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학술정보를 총체적으로 수집ㆍ총괄ㆍ정리한 기록이다. 일제강점기 조사기록, 북한에서 공개한 기록, 중국에서 간행된 발굴보고는 물론, 각종 도록ㆍ연구논문ㆍ저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추가자료, 신문이나 잡지기사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추가정보, 발굴 및 조사에 관여한 전문가와 일반인의 체험적 증언까지,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각각의 벽화고분 현상이 시간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종합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을 생애의 학문적 화두로 삼아 1983년 기초자료 재점검에서부터 출발해 지금까지 달려온 연구의 한 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인식 부족으로 여전히 방치ㆍ훼손ㆍ외면ㆍ왜곡당하고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저자는 한시바삐 북한과 중국의 연구자들이 포함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의 국제네트워크 구축이 급선무임을 언급하면서 현재까지의 연구를 매듭짓는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고구려 벽화고분은 1902년 남포의 강서대묘, 강서중묘의 발견과 조사를 시작으로 1세기가 지나는 동안 126(북한 평양 및 안악 일원 88, 중국 길림성 및 요녕성 38)가 발견되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벽화고분 일부는 다른 고구려 유적들과 함께 2004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유네스코의 지원과 관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외의 유적 대다수는 발견 당시부터 벽화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후 빠른 속도로 원상을 잃어가고 있다.

벽화고분과 같이 고고학적ㆍ미술사학적ㆍ역사학적ㆍ종교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유적은 발견조사 당시의 상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출토유물과 벽화의 보존처리 및 모사도 제작과정, 연구과정과 성과, 조사 주체를 달리하는 2차ㆍ3차의 재조사를 통해 추가된 학술정보 등도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벽화편 등을 수습해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거나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전시할 때는 원상에서 달라진 부분도 별도로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구려 벽화고분은 체계적인 정밀조사가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고, 조사기록이 온전히 정리ㆍ보존된 사례도 많지 않다. 일부 유적의 조사기록은 소재지역이 겪은 정치ㆍ사회적 격변 때문에 도중에 산일ㆍ소멸되기도 했다. 또한 이 분야에 장기간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는 전문가가 극히 드물어 기록의 수집과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면도 있다. 실제로 고구려 벽화고분자료는 지난 1세기에 걸쳐 몇 차례 부분적으로 정리된 적은 있지만, 전면적인 수집ㆍ분류ㆍ정리 결과가 모습을 갖춘 연구서로 간행되지는 못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에 관한

엄밀하고 흥미로운 연대기

이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조사ㆍ보고된 126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학술정보를 총체적으로 수집ㆍ총괄ㆍ정리하고자 했다. ‘과거와 현재, 시작부터 지금까지무엇이 어떻게 있었으며 어떻게 달라졌는지 소상히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러하여 국내외 한국 고대문화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가 고구려 벽화고분이라는 역사문화유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려고 했다.

저자는 긴 세월을 거쳐 온 이 운명적 연구의 시작을 이렇게 회상한다. “필자가 처음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려 했을 때 부딪친 문제가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유적정보였다. 참고하려고 보았던 몇 편의 연구논문에서도 인용한 자료가 제각각이고 벽화의 내용과 배치, 고분의 구조와 재료, 축조기법, 보존상태 등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기초자료를 재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씨앗 원고작업은 198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각각의 벽화고분이 발견ㆍ조사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재정리를 통해 고분의 입지ㆍ구조ㆍ규모ㆍ재료ㆍ유물ㆍ벽화에 대한 기본정보를 충실히 재구성했으며, 나아가 벽화 및 고분의 조사연구 사진과 모사도ㆍ유물의 성격과 계통ㆍ유적에 얽힌 이야기 등도 수집ㆍ정리하여 책 속에 각주로 달거나 부록자료로 세심하게 보강하였다. 또한 동아시아 미술사의 큰 흐름 속에서 고구려 고분벽화가 지니는 예술사적 위치를 개론하고, 벽화제작 기법, 벽화안료의 종류, 안료재료의 성격과 채취방법, 안료제조에 사용된 아교의 종류 및 제조법, 벽화기법 등도 꼼꼼하게 정리해두었다. 따라서 이 책은 전문적인 학술연구뿐만 아니라, 역사문화ㆍ종교민속ㆍ예술 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심화ㆍ응용작업의 원천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에 관한 엄밀하고도 흥미로운 이 연대기를 통해 독자들은 고구려 문화의 독자성과 국제성, 고구려 과학기술과 예술의 수준, 고구려인의 사상과 종교, 고구려 문화의 대외 영향력 그리고 고구려 사회의 변화과정을 일관된 시선으로 조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구축해가야 할

연구와 보존의 네트워크

저자는 책의 서문을 이렇게 열었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가 시도되어 성과를 공유하고, 종합해야 하는 유적이다. 그러나 기초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어 참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기본적인 접근에서도 오류를 안고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고구려 벽화고분은 고고학ㆍ미술학ㆍ역사학ㆍ종교학ㆍ예술학ㆍ민속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시각과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가 필수적인 유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학제적 경로를 통해 한국 문화사와 예술사가 보다 심화된 연구단계로 들어서는 관문 역할을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한다. 예컨대 고분미술은 시대사조ㆍ자연지리와 역사지리ㆍ사회제도ㆍ생활풍속ㆍ생업활동ㆍ과학기술ㆍ종교와 신앙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형성되며 펼쳐지기 때문에, 이 연구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외에도 이학ㆍ공학ㆍ예술학ㆍ체육학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성과와 방법론이 적용된다. 따라서 각계 전문가들의 치밀한 시선이 응집된 결과인 이 책은 분야 간 장벽이 높다고 평가되는 국내 학계의 통념적 관성을 바꾸는 한 계기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40년 가까이 고구려 벽화고분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의 바람은 이렇다. 하루빨리 여러 나라 학자와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고구려 벽화고분 연구네트워크가 만들어져 관련 학술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고 연구되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 그리고 여기에 무관심과 몰이해 속에 악화된 환경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는 벽화고분들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국제적인 관심과 정책적 해결방안의 공동 모색이 시급한 과제라는 호소가 덧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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