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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확장된 '평화'의 연구범위
더 확장된 '평화'의 연구범위
  • 전재성 서울대
  • 승인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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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동북아의 평화사상과 평화체제』(강성학 엮음, 리북 刊, 2004, 408쪽)

▲ © yes24
전재성 / 서울대·정치외교학

엄청난 군비경쟁과 전쟁으로 얼룩졌던 냉전이 종식됐을 때, 인류는 평화를 기대했으나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여전히 비참한 전쟁과 테러가 만연해있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과 폭력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강대국들의 각축과 분단 상황 속에 놓여있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보다 탄탄한 학문적 노력이 절실하다.

고려대 평화연구소가 펴낸 '동북아의 평화체제와 평화사상: 탈냉전기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모색'은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운명을 국제정치, 사상, 쟁점의 측면에서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동북아 국가들의 입장이 21세기에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지도자의 위치에서 패권적 중재자로 전환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포함한 주요 강대국들에 관여하고자 하며(강성학), 보다 구체적으로 양자주의를 강화하고 보완적으로 다자주의를 활용하고자 하고 있다(조철호).

한편, 일본은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동아시아평화협력구상 및 자유무역지대안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경제협력을 제도화하고 이를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게 조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현진덕). 러시아는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면서,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개선으로 미래의 외교적 선택지를 넓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균형자로서, 부활된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이웅현).

동북아의 평화라는 주제를 위해 연구범위를 20세기 이전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 책이 가지는 큰 장점이다. 사실 주변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현실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한민족이 기울여온 노력은 장구한 역사를 가지는데, 16세기 이전 경직된 사대주의로 돌아서기 전에, 한반도는 상황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대외인식에 기초한 외교를 펼쳤고(이정남), 19세기  제국주의적 침탈 속에서도 동양삼국 정족론, 동양삼국 공영론, 아시아연대론 등 다양한 형태의 생존 모색이 이뤄졌다는 점 등이 논의되고 있다(김현철).

평화가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결핍과 억압, 차별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면, 평화의 문제를 보다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의 3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주류화 담론이 여성발전 뿐 아니라 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패러다임이라는 점(라미경), 제도화를 향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 동북아 해양환경협력이 가지는 함의(김현진), 한민족 네트워크가 역내 차별을 극복하는 강력한 접착제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박창규),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저해하는 인종차별주의, 외국인혐오증, 자민족중심주의의 극복과 문화적 다양성 수용이 중요하다는 점(우평균) 등이 논의된 것은 평화연구에 있어 새로운 시도라 평가될 만하다.

향후 지역평화를 위한 한국의 외교정책, 우리의 사상적, 역사적 자산의 이용방안, 동북아와 세계의 관계 설정 등에 관한 후속연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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