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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 김재호
  • 승인 2020.12.14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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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임진왜란 기록, 오희문의 난중일기
오희문 지음 | 신병주 해설 | 사회평론아카데미 | 464쪽

이 책은 임진왜란 3대 기록물 중 하나인 『쇄미록(瑣尾錄)』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이란 뜻을 지닌 『쇄미록』은 16세기 조선 양반 오희문이 임진왜란 시기를 전후해 9년 3개월 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로 피란을 다니며 쓴 일기책으로, 조선 중기의 일상사, 생활사, 사회경제사 연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오래된 고전이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전란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남아 가문을 일으켰는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쇄미록』에는 오희문이란 점잖고 소심한 양반과 그의 수족 같은 사내종 막정과 송노, 여동생과 매부들, 아들딸과 사위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 역사 소설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전쟁의 시간을 버텨 내며 삶을 이어온 파란만장한 오희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일상성, 지속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오희문의 『쇄미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류성룡의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 3대 기록물로 꼽힌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전투를 지휘하며 난세를 헤쳐 나간 영웅의 일기라면 류성룡의 『징비록』은 관료의 시선으로 국가와 전쟁을 반성적으로 살펴본 국가 차원의 기록물이다. 이와 달리 『쇄미록』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전란의 시기를 겪으면서 쓴 일기글로, 개인 차원의 기록물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양반 오희문의 난중일기’라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의 생생함은 없지만 당시 후방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생존이 가장 중요했던 전란 시기의 기록이어서 평소라면 기록하지 않았을 먹을거리를 비롯한 일상의 소소한 기록이 넘쳐난다. 16세기 조선의 일상사, 생활사, 풍속사, 사회경제사 연구에 꼭 필요한 사료의 보물창고라 할 만한 이 기록의 중요성 때문에 『쇄미록』은 오래전부터 역사학계, 특히 조선시대 연구자들에게 주목받아 왔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쇄미록』은 오희문이란 점잖고 소심한 양반과 그의 수족 같은 사내종 막정과 송노, 여동생과 매부들, 아들딸과 사위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져 역사 소설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기나긴 피란 생활을 버텨 내며 삶을 이어온 파란만장한 오희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일상성, 지속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쇄미록』은 일기 형식의 생활글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넘어 400년 전 임진왜란 시기, 더 나아가 조선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오희문의 난중일기’를 한 권으로 만나다
- 9년 3개월, 51만 9,973자로 이루어진 『쇄미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다

『쇄미록』은 9년 3개월의 일기 기록인 만큼 그 분량 또한 방대하다. 현존하는 『쇄미록』 필사본은 총 7책, 1,670쪽, 51만 9,973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9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글 번역서는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중요하고 흥미로운 역사 기록물이라 하더라도 분량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은 원문의 흐름을 따르되 반복하는 이야기를 줄이고 중요한 내용 중심으로 딱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가능한 원문의 맛을 살려 있는 그대로의 오희문의 모습과 그의 시대를 읽을 수 있게 했다. 또한 각 장을 연도별로 구성하고 이야기 흐름에 맞추어 소제목을 임의로 추가하여 독자로 하여금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은 각 장마다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의 ‘함께 읽는 쇄미록’ 코너를 마련해 일기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덧붙였다. 임진왜란 시기의 참혹한 실상과 전염병인 학질에 대해, 그리고 오희문의 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비 이야기와 양반에게 중요했던 봉제사와 접빈객, 혼인과 과거 급제, 전란 기간의 생계수단과 먹을거리, 술과 놀이문화, 꿈과 점복, 호환 등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좋을 주제를 선정해 해설을 덧붙였다. 마지막 장에는 『쇄미록』이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가 접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책의 역사’를 들려준다.

총 3,368일 동안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 16세기 조선의 일상사, 생활사, 사회경제사 연구의 보물창고

오희문은 9년 3개월, 총 3,368일 동안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종이를 구하기 어려운 전쟁 통에 쓰인 것이기에 더욱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오희문은 평소라면 기록하지 않았을 소소한 이야기를 모두 기록했다. 여느 역사 소설보다 재미있고, 여느 역사 교과서보다 생생한 서술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여기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대목도 있고, 반대로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는 우리의 상식을 깨뜨리는 내용도 있다.

오희문은 일본군이 지나간 곳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일기 곳곳에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과 명나라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는 조선의 조정에서 발행한 조보(朝報)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원칙적으로는 전현직 고급 관리들만 볼 수 있었지만, 오희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부 사대부들도 비공식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오희문의 기록을 통해 신립, 원균, 이순신뿐 아니라 의병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 등 임진왜란의 영웅들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당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전란의 시기였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는데, 오희문의 일기에는 그날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어떤 먹을거리를 선물로 보내왔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한 음식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이처럼 솔직하게 기록한 일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특히 충청도 임천과 강원도 평강에서 오래 머물며 농사를 지을 때는 마치 촌부의 농사일기처럼 어떤 작물을 키우고 수확했는지를 상세히 적어 놓았다. 이들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고추,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모두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인 작물들로 조선 후기에 들여온 것이어서 16세기 오희문의 일기에서는 이 식재료에 대한 기록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주로 먹었을까?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에서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쇄미록』의 가치는 먹을거리에 대한 기록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조선은 양반의 나라이자 노비의 나라였다. 양반보다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한 노비는 고조선시대부터 존재했는데, 조선시대의 노비는 가사 노동에서 편지 전달까지 양반의 수족 같은 역할을 하였다. 『쇄미록』에는 덕수, 인수, 끗손, 강춘, 광이(광노), 춘이, 세만, 금손, 눌은개 덕룡, 덕개, 동을비, 막정, 분개, 송이(송노), 명노, 안손, 춘옥, 춘금이, 향비, 서대, 향춘, 옥금, 흔비, 어둔, 삼작질개 등 다수의 노(사내종)와 비(계집종) 이름이 나온다. 일기에는 말과 노비가 없어 길을 떠나지 못하거나 문상을 가지 못하는 오희문, 노비를 끊임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로 묘사하며 괘씸해하는 오희문, 충직한 사내종이었던 막정이 죽자 불쌍하여 제사를 지내 주는 인간적인 오희문이 등장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간 오희문에 대한 이해를 넘어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 제도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쇄미록』에는 양반에게 가장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일, 손님을 맞이하는 일 등 일상이 기록되어 있다. 처가의 제사까지 챙기는 모습과 외가 사촌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16세기에는 처가살이가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당시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한다. 『쇄미록』에는 오희문의 가족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진다. 약 10년의 세월 동안 큰딸과 막내아들, 둘째딸의 혼인이 있었으며, 막내딸 단아의 죽음과 손주들의 탄생, 그리고 큰아들 윤겸의 과거 급제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학질로 목숨을 잃은 막내딸의 죽음 앞에서는 자식 잃은 아비의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함께 애통한 마음을 나누게 된다.

일기 형식의 생활글이어서 어렵지 않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읽다 보면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어느 순간 16세기 조선의 일상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희문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계절을 지내고 해를 넘기다 보면, 전쟁의 고통과 삶의 고단함을 잊고 10년 세월을 함께 훌쩍 지나게 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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