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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가난의 문법
  • 교수신문
  • 승인 2020.12.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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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철 지음ㅣ푸른숲ㅣ304쪽

이 책의 저자인 소준철은 어느 날 한 무리의 노인들을 목격했다. “2015년 3월의 어느 날, 가양역 근처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작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1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 여럿을 보게 됐다. 그녀들은 함께 다니는 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어떤 갈림길에 다다르자 뿔뿔이 흩어졌다.”(271쪽) 소준철이 본 노인들의 모습은 어떤 소설의 묘사와도 맞아떨어진다. “고물 줍기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였다. 물건이 나올 시점을 잘 잡아 때맞춰 돌아다녀야 했다.”(『소각의 여왕』, 이유, 23쪽) 즉, 소준철이 본 것은 폐지를 비롯한 재활용품을 주워 파는 노인들의 무리였다. 소준철은 이들을 외면하거나, 동정하거나, 이들의 처지를 자신에 빗대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이들을 연구하기를 택했다. 『가난의 문법』은 그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현장을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리어카나 카트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 가난의 표상이다. 가난의 표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 전후 시대에 누더기를 입고 맨발로 미군들에게 껌을 구걸하는 모습에서, 경제성장기 달동네의 판잣집 좁은 부엌에서 연탄불을 때는 모습, IMF 경제위기 이후 도심을 차지한 노숙인의 모습으로. “가난의 모습은 늘 바뀔 것이다. 다음에 올 ‘가난’이 어떤 모습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9쪽)

가난한 여성노인에 대한 상징은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대개는 재활용품을 줍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빨래」라는 뮤지컬에서 빈곤층 여성노인은 폐지가 실린 작은 손수레를 끄는 모습으로 재현되는데, 꽤나 상징적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광고공모전에서 최우수 수상작을 받은 한 포스터는 더 노골적이다. “65세 때, 어느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아래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위에는 신문이 쌓인 카트가 그려져 있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년에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지 않고, ‘품위 있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125쪽)

달동네가 재개발되고 판잣집이 사라지면서, 넝마를 입고 고물을 주우러 다니던 넝마주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 가난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난은 모습을 바꾸었을 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판잣집 대신 쪽방 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넝마주이 대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나타났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옛날의 공동체는 사라지고 한낮의 동네에는 일할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의 노인들은 각자도생하며 폐지를 줍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사회는 65세 언저리를 은퇴연령으로 정해놓고 그 연령이 지나면 미래세대에게 일자리를 넘기기를, 이제는 쉬면서 사회의 복지제도라는 혜택을 누리기를 ‘강요’한다. 그런데 왜 폐지를 주워 파는 노인들이 있는 걸까? 젊은 날에 저축을 못한 것이, 연금을 부으며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자식이 있어도 그들에게 부모의 생활비를 댈 능력이 없는 것이, 과연 노인들의 잘못일까?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 중에는 여성이 많다.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여성노인의 빈곤은 심각한 문제다.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만큼 빈곤함도 길게 겪는다. 게다가 여성노인은 남성노인에 비해 체력이 달리고, 숙련된 기술이 없는 경우가 많고, 특별한 직업 경력도 없다. 소준철은 ‘폐지 줍는 도시의 여성노인’을 주인공 삼아 사회와 제도 사이의 빈틈에서 연구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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