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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오스트랄리스
테라 오스트랄리스
  • 교수신문
  • 승인 2020.12.1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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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철 지음ㅣ푸른길ㅣ352쪽

지도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따라서 고지도를 연구하면 역사의 단면을 층층이 살펴볼 수 있다. 고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세계관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지도가 미지의 남방 대륙인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지도이다. 테라 오스트랄리스란 라틴어로 남쪽에 있는 땅을 뜻한다. 그런데 단순히 남쪽에 위치한 땅이 아니라, 적도 이남에 위치한 남반구의 땅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테라 오스트랄리스가 북반구의 앤티포드(대척지) 개념에서 비롯된 상상의 대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천 년에 걸친 지리적 지식의 확장으로 인해 20세기 초에 와서는 지도 속에서 완전한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상상의 대륙이 어떻게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태평양 국가, 남극 대륙으로 분화되어 지도 속에 표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면 탐험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다양한 인식도 엿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도가 탐험의 도구나 결과를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서, 새로운 미지의 대륙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지도 제작자가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자의적으로 그린 땅의 모습이 탐험대를 파견하는 근거자료가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들이 새로운 땅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남태평양의 많은 섬은 식민지화되었다.

이 책은 고지도 학계 권위자로 알려진 정인철 교수가 펴낸 두 번째 연구서로 지리학, 지도, 탐험, 모험의 관점에서 테라 오스트랄리스와 관련한 전반적인 지식을 다룬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남태평양, 남극 탐사에 대한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전기 및 역사 소설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는 아쉽게도 모두 탐험가 개인의 영웅적 업적에 대해서만 언급할 따름이다. 어떤 지도가 이들의 탐험을 유인하는 도구가 되었고 또 어떻게 지도의 빈 공간이 채워져 나갔는지를 지리와 역사적 관점에서 통찰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찾기 위한 모험은 인문학의 모티브로 활용되고 있지만, 잘못 분석되고 해석되는 일이 많다. 테라 오스트랄리스 지도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세계관이며, 탐험가들의 동기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관의 변화를 지도의 변화와 함께 살펴보고, 탐험의 동기 변화를 정치적·사회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리고 동시대의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배경으로 삼는 문학 작품의 내용 역시 소개한다.

저자의 첫 번째 연구서 『한반도, 서양 고지도로 만나다』는 2016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동아일보 주관 ‘2015년 올해의 책 10’에 선정된 바 있다. 서양 고지도에 등장하는 한반도에 대해 기존의 논문이나 저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 덕에 “타인의 시선으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를 인식하는 틀을 제공한다.”라는 평을 들었다. 5년 만에 돌아온 두 번째 연구서 『테라 오스트랄리스』 역시 상당수의 내용이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이며, 지도 역시 국내에 새롭게 선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수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무도 연구해 보지 않은, 말 그대로 ‘미지의 남방 대륙’이었던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향해 항해한 저자의 열정이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콘텐츠를 맛보는 신선함으로 가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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