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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유쾌하게 살아가는 방법
학이사: 유쾌하게 살아가는 방법
  • 최현숙 상지대
  • 승인 2004.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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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상지대 사회복지학 

                                      
학부 시절, 나의 문제의식은 ‘상황 속의 개인’이었다. 개인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운신할 수 있는 폭(자유)이 얼마나 될까, 혹은 특정 환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변화/변질될 수 있는지를 추구하고 싶었다. 특히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과거의 귀족/양반이나 국가권력/공권력이 보여주는 개인에 대한 위해가 얼마나 절망적인지는 반드시 문학작품들이 아니라도 뉴스와 뉴스의 행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사회의 억압 그 자체보다는, 개인이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찾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얻은 나의 학사 논문은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사회의식’이었다. 귀족의 권한으로 영지 내의 서민은 결혼하기 전날 밤, 신부가 영주에게 수청을 들어야 하는 관습과 이를 극복, 타파하려는 노력들에 관한 내용이다. 처음 논문계획서를 발표할 때는 좀 더 야심차게, “한국의 탈춤과 보마르셰 연극에 나타난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의식 비교”였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탈춤연구회 활동을 하며, 1970년대의 사회적 질곡 속에서, 앞에 나서지도, 눈감고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상황 속에서 갈등만 하고 있었다. ‘살롱 위멘느’(Salon Humaine)를 여는 게 꿈이셨던 당시 세미나 담당교수께서 “이런 광범위한 사회적 주제는 나중에, 박사학위를 할 때 쓰고, 내용과 범위를 대폭 줄이라”는 지도로 한국상황을 몽땅 잘라 버리고, 단 한 편의 희곡 분석으로 줄였지만, 나는 아직도 사회의식과 관련해 그 과제를 명쾌하게 풀지 못하고 있다. 하긴 학부생인 내가 그 광대한 주제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으랴……. 내가 비극이 아닌 희극을 선택했던 것은, 어쨌든 세상 속에서 질질 짜지 않고,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 좋지 않은 상황, 어려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엇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가 다음 과제가 됐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사회적 불평등의 가장 큰 변수가 계층간의 차이임을 확인하면서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싫었다. 인간을 너무 운명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황 속에서 불리한 개인은 과연 의지를 가지고 노력할 일이 없는가? 불리한 개인을 돕는 일은 헛수고인가? 힘없는 개인은 결국 불행하고 슬프게 살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가.

이런 의문은 “진화는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상호부조에 의한 공존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가장 잘 돕고, 잘 협동하는 동물이 적자이며, 살아남아 온 승자”라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만나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적 원조연결망과 상호부조”를 연구하면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서로를 공격하고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협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대한 힘 앞에서도 약한 사람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상호부조’는 매우 오래되고도 여전히 새로운 행동양식이다. 신자유주의로 가득찬 지금 세상이 아무리 극단의 경쟁과 이기로 치닫는다 하여도 어쨌든 개인은 기분좋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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