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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와 무용의 만남
386세대와 무용의 만남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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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 16: 연구모임' '춤/지성'

'춤'과 '지성'은 썩 어울리는 한 쌍은 아니다. 두 단어의 느낌이 다소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연구모임 '춤·지성'(회장 유미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은 그 이름에서부터 이런 낯선 조합을 염두에 둔 듯 했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이 모임의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두 단어는 다시 조화를 이루며 서있다.

사실 무용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라는 것도 아직은 낯설다. 무용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이론이 생산될만큼 토양이 풍요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학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연구하는 것일까.

마이너리티 '아줌마'들이 주축

모임의 면면부터 살펴보자. 이 모임에는 최해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유미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박선욱 광주여대 교수, 무용평론가 이지현 씨를 비롯해 현재 8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전공분야는 무용인류학, 무용사회학, 무용치료, 무용미학, 무용사 등으로 세분화된다. 구성원들 대부분은 무용을 전공했고, 석·박사 과정에서 이론을 선택했다. 회원 모두가 여성이고, 이른바 386세대 '아줌마' 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마이너리티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모임의 출발부터 순탄치는 않았는데, 1990년대 말 무용이론을 전공하는 박사급 연구자들이 학술전문지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도제식 학풍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 자체를 꺼리는 측면도 있었고, "줄을 제대로 서"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듣기도 했다. 책의 출판 여부를 고민할 때, 힘을 실어준 이는 채희완 부산대 교수였다.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독려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책이 2000년도 6월에 출간된 춤을 위한 학술전문지 '춤·지성'이다.

그러나 창간호 이후 학술지 출간은 사실상 중지됐다. 5월 말에 제2호가 발간되는데, 창간호 이후 4년만의 결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 최해리 강사는 "나태했죠"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이면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너무 거창한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었을까, 동인들의 교체와 함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고된 성장통을 앓았던 것이다. 

한국무용사를 재조명하는 까닭

치기 어린 반발로 그쳤을 지도 모를 시도를 계속해서 엮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세미나였다. 4년간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세미나가 열렸는데, 무용이론의 국내외 연구현황을 짚는 것이 주된 방향이었다. 국내학계의 이론적 토대가 척박한 까닭에 서로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다. 이들의 공통된 관심은 한국무용사의 재조명이다. 창간호의 연구특집에서는 1920년대의 신무용의 궤적을 따랐고, 2호에서는 일제강점기의 무용을 조명했다. 3호에서는 해방공간의 무용을 다룰 예정인데, 매일신보를 읽어가며, 원로 비평가를 찾아가며 근대 공간의 무용사에 접근했던 것. 개개인의 문제의식이 더 뚜렸해진 것도 그간에 얻은 결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가 펴내고 있는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집필에 참여하고, 민속학과와 공동으로 무용기록을 추적하는 작업을 하면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됐기 때문이다.

유미희 회장은 "우리의 역할은 무용에 접근하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규정했는데, 우리에 맞는 이론틀을 모색하는 시도가 미숙했다 할지라도 신호탄은 돼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춤·지성'지의 2호 출간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은 3호부터는 학술'잡지'의 성격을 강화해 무용계 바깥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맏는 것이 첫 번째 계획. 장기적으로는 무용이론연구를 위한 센터 개설을 계획하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무용교양강좌부터, 전문가 양성을 위한 무용이론가과정까지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무용이론의 대안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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