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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회담' 이후 증가... 성과담을 지원 필요
'6.15회담' 이후 증가... 성과담을 지원 필요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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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남북학술교류의 현황과 전망

지난달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회장 강만길 상지대 총장) 남측창립총회가 열렸다. 이날 창립총회는 지난 2월28일 평양에서 남북 역사학자들이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한 데 따른 첫 조치다. 당시 남북역사학자 학술대회에 참가한 남북 역사학자들은 2월과 8월 매해 두 차례씩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정례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결성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했다. 분단 이후 남북이 함께하는 첫 상설 학술교류모임이다. 총회에는 허종호 북측준비위원장이 축하편지를 보내오는 한편, 남한 역사학자 2백50여명이 참석해 남북학술교류의 성과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국내 첫 남북 공동학술협의체 설립

이에 앞서 남북역사학자들은 지난 4년 동안 4차례 평양에서 남북공동학술토론회를 갖고 협의회 결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왔다. 2001년 2월과 2003년 2월에 각각 열린 1, 2차 학술대회에서는 '일제 조선강점의 불법성', '국호 영문표기문제', '일제 약탈문화재 반환'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내학계에서 남북한 공동학술교류가 논의됐던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간다. 중국개방과 더불어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남북한 학자들의 함께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지만, 당시만 해도 북한학자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학술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점은 2000년 6·15일 남북공동선언 이후. 그 결과 이제는 인천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보는 것도, 남북학자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는 것도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오는 8월에도 국제고려학회·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최하는 제2회 세계한국학대회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공동학술대회가 평양에서 열린다. 어디 그뿐인가.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어문규정집을 만들고 있고, 늘봄 문익환 기념사업회에서는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국어정보학회가 주관한 우리말 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를 통해 2002년에는 ISO2382기준 정보기술표준용어사전을 남북공동으로 출판한 바 있다. 한편 2002년 10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재일본 조선인과학기술협회 주관으로 남북통일과학기술심포지움이 열려 자생식물분야와 과학기술정보 유통분야에서 남북의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 식물지 작성을 위한 남북공동연구가 시작됐다.

이처럼 성과는 점차 가시화 돼 가지만, 남북한의 학술교류가 누구에게나 열린 길은 아니다. 교류를 운영할 구체적인 방법은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교류의 물꼬를 트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중국 조선족 학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교류협력에 관심을 가지는 조선족학자들도 있고, 북경대의 한국문화연구원, 연변대의 민족문화연구원 등이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다 개개인으로 맺어져 있다. 때문에 국제학술대회를 오가면서 교류 의사를 전달하고, 신뢰관계를 정립하는데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성과는 몇 년간 공들인 결과물인 셈. 또한 누가 남북한 학자들을 중개하는지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자칫 잘못하면 중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쌍방의 신뢰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자들 간의 교류는 조금씩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홍윤표 연세대 교수(국어학)는 문영호 북한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박사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창구가 마련되고 나면, 제3국의 학자를 통해 이메일이나 팩스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필요한 경우 방북도 까다로운 일은 아니다. 북한의 초청장이 있으면 통일부를 통해 방문비자를 받을 수 있다. 소요되는 시간은 20일 정도. 단체 입국일 경우 직항기를 띄우기도 한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국어학, 한국고대사, IT 분야 등 비교적 이념 대립이 없는 분야에서 교류를 먼저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기업, 학술교류 비용 지원 절실하다

남북학술교류에서 있어서가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북한에서 학술대회를 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해외에 가는 만큼의 비용이 든다. 중국을 경유해 들어가는 비행기표가 1백 만원 정도인데다, 남한과 비슷한 정도의 체류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독점취재를 약속한 언론사가 비용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경우는 있지만, 그외 민간기업들은 지원을 꺼리는 편이다. 국제 한국학 학회인 국제고려학회는 한국학연구기금으로 교류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개인이 각자의 경비를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차원의 지원은 학술진행재단에서 진행하는 남북학술교류 지원사업이 있는데, 학술회의의 경우 2천만원 가량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쉬운 것은 남북협력기금이다. 현재 3천억 정도가 조성돼 있기는 하지만, 학술행사에 지원된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학술교류와 북한학자들을 보는 시선이 고르지 못한 것도 힘든 점이다. 홍윤표 교수는 "북한학자들을 대하면서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학자로 대우하지 않아 곤란했던 적도 많다"라고 전했다. 순수학술교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는 학자 대 학자 간의 교류임을 기억해야 하다는 지적이다. 

남북학술교류는 순항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은 멀다. 학술용어 및 연구방향이 다르게 갈라서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남한의 자모순서가 다르다거나, 남한은 양의학과 한의학이 완전히 분리돼 온 반면 북한의 침뜸의학은 양의학과 한의학의 결합으로 나가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간 학술교류는 시급함이 덜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장관급 회담에서 학술교류에 대한 합의서가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라며, 국가적 차원의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 점도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학술교류가 그 특성상 더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중양 남북학술교류협회 중앙위원은 "산학협력차원에서 민간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데, 공동기술개발 및 장기적 차원의 시장 개척이라는 측면에서도 학계의 연구는 선행돼야 한다는 것. 사회적 이해를 끌어내는 동시에 장기적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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