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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상 쇠락하나
지식인의 위상 쇠락하나
  • 이기홍 강원대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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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이기홍 / 강원대·사회학

‘한국 지식인 사회’에 대한 교수들의 인식을 살펴보는 설문조사의 결과는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다. 분석자료를 훑어보면서, 우선 대다수의 교수들이 교수를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교수사회가 다른 사회집단에 비해 더 나을 것이 그다지 없다고 평가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른바 ‘지식인 집단’도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것이 없다는, 또는 더 ‘속물적’일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인식은 텔레비전 드라마 ‘아줌마’를 통하여 널리 확산되었다-을 교수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오늘날 지식인으로서의 교수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의견을 보인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이라고 여겨진다. 소득의 측면에서 본다면 요즈음 교수들은 자기 자식들로부터 ‘나는 자라서 교수는 되지 않겠다’는 말까지 들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지식인으로서의 교수의 위상’은 소득보다도 ‘지적 권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이다. 상황과 조건은 매우 다르지만, ‘나물먹고 물마시던’ 조선시대의 선비의 위상은 ‘부’와는 부의 상관관계를 갖지 않았던가.

지식인의 지적 권위는 무엇보다도 그 지식의 진정성에 기초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결과는 교수사회의 표절의 수준에 대하여 단지 18.3%만이 전혀 또는 대체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대다수의 교수들이 자신의 지적 권위의 한가지 기초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하여 지식인이라면 도덕적으로도 匹夫보다 우월해야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반수를 넘는 응답자들이 교수집단이 전문성에 관해서는 다른 사회집단보다 우월하다고 하겠지만 도덕성이나 독립성에서는 다른 집단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교수들 스스로도 교수사회를 독특한 성격의 ‘지식인집단’이기보다는 여러 ‘직업집단’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식인의 덕목에 관한 응답은 매우 시사적이다. 지식인의 최고 덕목으로는 도덕성과 전문성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살펴보면, 연령이 낮아지면서 도덕성을 꼽는 응답자의 비율은 낮아지는 반면 전문성을 꼽는 응답자의 비율은 높아지는 점이 눈에 띤다.

물론 이 두가지 덕목은 상호배타적인 범주가 아니라 지식인이라면 동시에 추구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응답율의 변화는 교수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덕성이라는 덕목보다는 전문성이라는 덕목을 더 중시해 가는 추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기능적’ 지식인이라는 말을 연상하는 것은 아마도 과잉반응일 것이다.

더하여, 도덕의 이중성을 한국 지식인 사회의 문제로 지적하는 응답율이 가장 높다. 그런데 교수임용시 남녀차별이 있는가를 묻는 ‘객관형’ 질문에 대해서는 70% 이상의 응답자가 차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80%이상의 응답자가 자신은 ‘평소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주관형’으로 답하고 있다. 도덕의 이중성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서로 연관시켜 도덕의 이중성을 찾아낼 수 있는 응답들은 또 있지만, 생략하고자 한다.

조사결과에 대한 나의 이러한 읽기는 한국 지식인 사회의 단지 일부의 측면에만 초점맞춘 편향되고 왜곡적인 것으로 비난받을 만하다. 그렇더라도, 이제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지적·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으로부터 쇠락해가고 있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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