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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종교계의 두 풍경
문화비평_종교계의 두 풍경
  • 장석만 종교연구원
  • 승인 2004.05.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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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이 개신교에서 나타났다. 하나는 4?15 총선을 기한 한국기독당의 창당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회노동조합의 설립이 이뤄진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기독당은 23만표를 얻어서 1.1%의 유효 득표율을 거뒀다. 국회의원 당선자도 내지 못했고, 유효 득표율도 2% 미만이었기 때문에 한국기독당은 계속 존립할 수가 없게 됐다. 군소정당 가운데는 가장 많은 득표를 했으나, 창당 주도세력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결과였다.

총선에서 한국기독당이 노린 것은 지역구 의원보다는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한국기독당을 위해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거액을 지원했고, 국민일보는 노골적으로 홍보해줬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자랑거리는 단일교회로 세계최대의 신도 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신도 수는 8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한국기독당의 서울지역 득표는 6만표 정도였다. 한국기독당이 서울에서 얻은 득표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신도의 1/10도 안됐다.  

한국기독당의 창당에 대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과 개신교 시민단체, 그리고 개신교 양대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은 환영을 하지 않았다. 종교의 본격적인 정치참여에 대한 우려와 창당 주도세력의 極右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국기독당이 총선 가담을 강행한 커다란 이유는 상당수의 보수적 개신교 신도가 무조건 ‘같은 편’인 자신에게 몰표를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3·1절 시청 앞 집회와 같이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치러졌던 대규모 시위의 경험에서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반공과 친미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치 집회에 우익 정치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가했던 경험은 한국기독당의 창당에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통일교가 家庭黨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참여할 것이라는 첩보가 창당 세력에 적지 않은 조바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교의 세계일보에 맞서 국민일보를 만들었듯이, 통일교 정당에 대항하는 개신교당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기독교회노동조합은 4월 29일 인천 계양구청에서 지역노조 신고증을 발부받음으로써 정식으로 설립됐다. 종교단체의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많은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노조 설립을 추진한 이는 그동안 개신교회 안에서 가혹한 노동 착취가 자행되었음에도 신앙공동체의 미명 아래 은폐돼 왔으며, 사회적 不義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동안 매스컴에 부각됐던 대형교회의 비리와 세습 문제를 포함해 개신교회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교회 안팎의 착취 및 그 은폐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단 지도부는 노조 설립에 대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애써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노조 설립은 그동안 개신교회가 주장해왔던 신앙공동체의 ‘호혜적 평등성’과 ‘가족적 복지’가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를 명백히 드러냈다. 물론 교회라고 해서 재산과 권력의 편중이 어느 정도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설립으로 확인된 것은 교회의 ‘지배층’이 신앙공동체의 현란한 수사학을 이용하며 이런 불평등 구조를 더욱 더 심화, 지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가 지닌 영향력은 엄청난 반면, 스스로 淨化할 수 있는 자체의 힘은 별로 강하지 않다. 친미반공을 외치는 시위는 순수한 우국충정의 비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투명치 못한 교회 재정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정당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개신교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만연해 있는 사리사욕의 추구와 독단적 처사가 도대체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하나의 생각은 정교분리의 이데올로기를 자기 구미에 맞게 이용하는 현재 모습보다, 오히려 개신교 정당이 결성돼 어쩔 수 없이 공적인 책임감이 부각되도록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로부터의 정의를 추구하는 교회노조와 공적 책임감을 구현하는 개신교 정당이 안팎에서 개신교회의 집단이기주의와 사리사욕 추구를 견제한다면 개신교회가 좀 더 희망적이게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한국기독당의 해체에 좌절하지 말고 개신교정당의 결성을 다시 시도하라고 바래야 할 것 같다.

장석만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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