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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지능의 외주화일까 인간 사고의 확장일까
딥러닝, 지능의 외주화일까 인간 사고의 확장일까
  • 박강수
  • 승인 2020.12.0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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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재단 ‘AI 크로스’ 강연 ⑨ 헬로 딥러닝

카오스재단(이사장 이기형)이 인공지능(AI)을 주제로 2020 가을 카오스강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7일부터 오는 12월 9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총 10회에 걸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강연을 한다. ‘AI 크로스’를 주제로 의학, 기후, 음악, 수학, 로봇 공학 등 각 학문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최첨단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번 8강에서는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가 ‘딥러닝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에 대해 강연했다.

카오스재단 ‘AI 크로스’ 강연 및 연재 순서

1 브레인 3.0 AI와 뇌공학이 바꿀 인류의 미래

2 수학을 통하여 세상을 3차원으로 보는 법

3 게놈데이터를 이용한 정밀의료

4 딥러닝으로 엘니뇨 예측하기

5 컴퓨터 비전과 딥러닝의 현재와 미래

6 AI의 사고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7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할 것인가?

8 바이오메디컬 인공지능

9 헬로 딥러닝: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딥러닝을 이해하기

10 음악과 인공지능의 만남

 

보이저X 대표의 인공신경망 큐레이션

뜯어보면 단순한 알파고와 자율주행차 엔진

학습과 지식을 재정의하는 딥러닝

 

나침반은 고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극성을 가리키는 이 바늘은 이후 인류 문명사의 방향을 바꿔 놨지만 당시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나 자기장의 존재를 알고 나침반을 만든 건 아니다. 산업혁명의 불씨를 당긴 증기기관이 발명된 것은 18세기 초 중반의 일이다. 반면 인류가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열역학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0여 년 뒤다. 요컨대 기술이 먼저 세상을 바꾸고 이론이 이 변화를 따라잡아 해명한다는 말이다.

남세동 보이저X 대표는 그 다음 기술은 ‘딥러닝’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10년이 채 안 된 딥러닝의 원리를 아직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데 그 사이 벌써 인공지능은 바둑과 장기와 체스를 섭렵하고 음성 번역과 암 진단까지 해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딥러닝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딥러닝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하는 남 대표의 말이다. 남 대표는 “중학교 수준의 수학 지식만 있으면 딥러닝 신경망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뇌는 그냥 뉴런과 시냅스 덩어리다. 그런데 사람은 똑똑하다. 그래서 컴퓨터도 그렇게 하면 될 거라 믿고 해왔는데 수 십년만에 그게 됐다." 강연 중인 남세동 보이저X 대표.
"뇌는 그냥 뉴런과 시냅스 덩어리다. 그런데 사람은 똑똑하다. 그래서 컴퓨터도 그렇게 하면 될 거라 믿고 해왔는데 수 십년만에 그게 됐다." 강연 중인 남세동 보이저X 대표.

 

지난 2일 저녁 8시 온라인 생중계된 카오스재단 ‘AI크로스’ 아홉 번째 강연에서 남 대표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딥러닝 이해’에 대해 강연했다. 남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1999년 네오위즈에서 커뮤니티 플랫폼 ‘세이클럽’을, 네이버 자회사 라인에서 셀카앱 B612를 만든 바 있으며 현재는 딥 러닝 스타트업 보이저X의 대표를 맡고 있다. 남 대표는 딥러닝과의 첫 만남을 “날아 다니는 건물을 본 건축가의 기분이었다.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회상한다.

 

프로그래밍하는 프로그램, 딥러닝

딥러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을 이해해야 한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계산기다. 입력, 산출되는 모든 정보를 컴퓨터는 숫자를 통해 이해한다. 터너의 풍경화도 쇼팽의 연주곡도 컴퓨터에게는 숫자다.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어떤 기능을 탑재하고자, 논리를 구축하고 컴퓨터 언어로 번역해 집어넣는 총체적 작업이 프로그래밍이다. 알고리즘을 구상하고 코드를 입력하는 일이다. 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거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우의 코드는 이미 10년 전에 코드가 1억 줄을 넘어섰는데 한 땀 한 땀 사람이 짠 것이다.

논리와 알고리즘을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해서 짜 넣는 작업이 코딩이다.
논리와 알고리즘을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해서 짜 넣는 작업이 코딩이다.

다만 사람의 프로그래밍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당장 개와 고양이의 사진을 구분하는 프로그램도 만들 수 없다. ‘고양이를 식별하는 알고리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케 한 현재의 딥러닝 기술은 프로그래밍의 성과가 아니다. 사람이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인공신경망이고 인공신경망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알고리즘을 찾아 낸다. 인공신경망은 인간의 뇌를 본 따 만들었다. “기존 프로그래밍에 비해 인공신경망은 구조적으로 더 단순하다. 사람의 뇌가 뉴런과 시냅스 다발인 것과 같다.” 남 대표의 설명이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W값’ 찾기

인공신경망의 내부는 간단한 연산체계로 구성된다. 우리 머릿속 신경 세포에 해당하는 뉴런처럼 여러 개의 노드가 층층이 줄지어 연결되고 곱셈과 덧셈을 반복하며 각각 함수 노릇을 한다. 연산의 결과로 신경망은 최종적인 값을 도출하고 이에 따라 결정이 내려진다. 좌하귀 소목에 흑돌을 놓을 것인지 15미터 전방에서 우회전을 할 것인지 판단한다. 처음에는 랜덤한 계산식에서 시작해 인공신경망은 스스로 연산을 반복하며 정확한 함수의 형태를 찾아간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단순 무식한 반복인데, 그 어느 프로그래밍보다도 효과적이다.

이를 ‘W(weight)값’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W값은 각각의 세부적 계산에서 곱셈에 동원되는 숫자다. 수만, 수십만 개의 W값을 조정하면서 연산을 반복해 최선의 형태를 조율한다. “어느 함수와 알고리즘이든 최적의 W값이 존재하긴 한다는 사실은 수학적으로 증명돼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반복으로 W값을 이렇게 잘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증명돼 있지 않다. 신기한 지점이다.” 즉, 딥러닝 인공신경망이 어떻게 최선의 계산식을 찾아내는지 그 방법론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는 알고리즘을 사람은 못 찾았는데, 인공지능은 찾았다.”

위의 네트워크 사진이 노드와 레이어로 이루어진 인공신경망이고 아래는 원 중 하나인 노드를 확대한 것이다. 수식이 복잡해 보이지만 화살표를 타고 들어온 숫자에 W를 곱해서 모두 더하고 그 값을 함수에 넣어 다시 내보내는 방식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고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운전을 하는 과정이다.
위의 네트워크 사진이 노드와 레이어로 이루어진 인공신경망이고 아래는 원 중 하나인 노드를 확대한 것이다. 수식이 복잡해 보이지만 화살표를 타고 들어온 숫자에 W를 곱해서 모두 더하고 그 값을 함수에 넣어 다시 내보내는 방식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고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운전을 하는 과정이다.

 

과학은 자연에서 패턴을 찾는 일

남 대표는 “이번 강연에서 한 단어만 남기라고 한다면 ‘패턴’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딥러닝을 “신경망으로 숫자에서 패턴 찾기”라 규정한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자연에서 발견한 패턴들이다.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배울 수 있다. 관건은 패턴을 잘 찾는 일이다.” 남 대표는 이 근본적인 원리가 “물리학자들이 자연에서 수학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고 표현한다. 자연의 법칙이 수식으로 표현된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에 어떤 패턴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고,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딥러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신경망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수록 더 성능이 좋아진다는 점”이라고 남 대표는 덧붙인다. 바둑을 가르치더라도 사람이 알고 있는 선제적 개념들을 알려주지 않아야 인공신경망이 더 잘 배운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게는 인공지능만의 학습 방식이 있고 인간의 지식은 편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남 대표는 “이미 인공신경망을 만드는 일도 인공신경망이 인간보다 더 잘한다”고 말한다. 딥러닝은 지식과 지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딥러닝은 지능의 외주화일까 인간 사고의 확장일까.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방식을 끝내 인간은 이해할 수 있을까. 강연 말미에 두렵고 설레는 질문들이 남는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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