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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보다 생산, 안주보다 혁신…‘메이커 시티’
소비보다 생산, 안주보다 혁신…‘메이커 시티’
  • 유만선
  • 승인 2020.12.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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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①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는 유만선 박사가 월1회 칼럼을 연재한다. 유 박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첨단 기술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비행위를 멈추고 직접 고안하고 만드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과연 공학자가 보는 세상은 어떠할지 칼럼을 통해 확인해보자. 

호기심과 창조적인 자기표현
타인들과의 협업으로 현실의 문제 해결해
기초부터 전문교육까지 스펙트럼 넓어

수년 전 ‘메이커 시티(Maker city)’라는 이름의 책을 지인들과 공동 번역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해보는 출판용 책 번역이다 보니 다소의 어설픔에도 애정이 가는 작업이었다. 책의 내용은 ‘메이커 시티’가 되기 위한 메이커 교육과 메이커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 활동, 도시 속 제조업 육성 등 각 분야 사회 혁신가들의 노력을 사례중심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저자인 피터 허시버그와 마샤 카다노프 등이 미국 도시혁신재단의 멤버이고, 샌프란시스코 도시정책 및 재생업무를 했기 때문인지 그 사례는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전통적인 소공인들이 메이커 시티를 통해 도시제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사진 = 픽사베이

미국에서 추진했던 메이커 시티 프로젝트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이곳에서의 메이커 교육은 학습자가 호기심을 느끼고, 도구를 통한 창조적인 자기표현이나 발명을 하며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타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생활에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보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교육은 아동 청소년들의 정규교육과정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성인 등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에서도 빛을 발한다. 

2013년 진 셔먼(Gene Sherman)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 사이드에서 시작한 보카데미(Vocademy)는 다양한 제조 도구들의 사용법들을 가벼운 수준에서부터 전문가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예를 들어 용접공이 되고 싶은 사람이 전문직업학교에서 통상 6개월 동안 약 1만2천 달러의 돈을 들여야 한다면 이곳에서는 한달에 약 99달러의 회비를 내고 용접기는 물론 진공성형장비와 같은 전통적인 가공장비에서 3D프린터, 레이저커터 등과 같은 디지털 가공장비까지 다뤄볼 수 있다. 처음부터 적성에 맞을지 안맞을지 모르는 전문교육을 위해 큰 돈을 낭비하기 보다 다양한 제조장비를 가볍게 경험하며 완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목적활동에 더 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디지털 가공장비 다뤄

한편, 메이커 시티에서의 지역사회 활동은 다양한 제작역량을 지닌 메이커들의 참여로 인해 말 뿐이 아닌 실행적인 성격이 강하다.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예바 부에나 아트센터(Yerba Buena Center for Arts)는 한 재단의 기금을 바탕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번화가 중 하나인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에서 마켓 스트리트 시제작 페스티벌(Market Street Prototyping Festival)을 시작했다. 

이 축제에서 마켓 스트리트의 주요 도로를 따라 배치될 시제품을 제작할 50개 팀이 선정되었으며, 모든 팀들은 지역활성화나 도시디자인의 목적을  충족해야만 했다. 약 3일간 벌어졌던 이 축제를 통해 약 25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방문하였고, 2만 5천 명이 설치될 시제품들에 대한 의견을 말하거나 투표할 수 있었다. 마켓 스트리트 시제작 페스티벌은 시민들이 도시정책 혹은 도시디자인의 소비자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메이커 시티에서의 제조업은 현재 도시 곳곳에 기계공이나 신발장인, 보석세공인과 같은 전통적인 소공인들이 적지 않게 위치한 서울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틈새시장의 발달, 소프트웨어와 맞물린 빠른 하드웨어 교체주기 등의 환경변화를 미국 내, 특히 도시에서 경쟁력이 있는 제품 제조가 벌어질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보았다. 여기에 가공기술자들의 네트워크화를 통한 분산제조 및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자금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도시제조업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때 포드(Ford) 자동차의 직원이었던 데이브 이반스(Dave Evans)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세운 픽티브(Fictiv)라는 회사가 대표적인데 그는 하드웨어 제조 주기를 단축하고 누구나 아이디어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빠르게 수정 보완할 수 있도록 지역 내 제조업체들을 네트워크화 하였다. 한 때 이 회사 홈페이지에 쓰였던 모토는 “당신이 상상하던 것을 2주 내에 당신의 책상에 올려 드립니다.”였다.

틈새시장과 하드웨어 교체주기

‘메이커 시티’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정책이기도 했다. 그는 메이커 운동을 미국의 여러 도시에 불러 들여 시민들이 ‘소비’보다는 ‘생산’을 '안주'하기 보다는 '혁신'을 지향하도록 하려했다. 비록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해 버린 중국에 대한 견제책으로서의 의미도 컸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정부에 이어 현정부에서도 전국적인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사업 및 메이커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서울 청계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나 서울 문래동의 ‘예술창작촌 프로젝트’ 등 도시재생 사업 또한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얼마 전 소개된 카이스트의 융합인재학부(학부장 정재승)에서는 과학과 인문의 융합인재 육성과 함께 사회혁신 만들기 수업이 도입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이커 시티’를 위한 노력들로부터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한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국내 최초 공공 메이커 스페이스인 ‘무한상상실’을 운영했으며,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공학과 과학기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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