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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와 불평등
능력주의와 불평등
  • 교수신문
  • 승인 2020.12.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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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홍세화 외 7명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28쪽

흔히 듣게 되는 ‘학벌이 아닌 능력이 중요하다’란 말이 상징하듯 능력주의는 곧잘 학벌주의의 대안으로 불려 나오곤 한다. ‘부모 찬스’, 곧 특혜를 없애기 위해 시험을 강화하고 더 ‘공정’한 능력주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 책은, 학력·학벌주의는 능력주의의 한 종류이며, 능력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지속시키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개인’과 ‘공정’을 내건 능력주의의 실상은, 평가하고 선발하는 측의 권력을 위한 체제이고 계급의 문제를 가리며 특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은 우선 능력주의의 기본 개념과 이에 대한 비판 논리, 한국 사회의 현실 등을 두루 담아 능력주의 문제를 막 접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학교교육, 시험/평가, 학벌주의와 지식/금융 자본주의의 문제, 노동의 위계화,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와 공공성 문제, 페미니즘 실천 속 능력주의적 경향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주의 이슈를 통찰함으로써 폭넓은 논의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이상적인 능력주의’를 주문하는 것이 아닌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는 글’에서 박권일은 능력주의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여겨지고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구하는 현실을 벗어나, 능력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요청한다.

1부 ‘시험과 학교, 능력주의의 산실’은 주로 교육 제도와 시험에 관련된 능력주의 문제를 다룬다. 첫 번째 글에서 청소년운동 활동가인 공현은 현재 능력주의 논리가 평등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능력주의가 학교교육과 시험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첫 글로서 능력주의의 주요 요소를 정리하며, 교육에서부터 탈능력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 번째로 교육학자인 이경숙은 시험/평가체제가 인간을 등급화·서열화하는 현실을 말하며 현 〈헌법〉 교육권 조항의 능력주의적 요소를 읽어 낸다. 그리고 과연 교육권이 ‘능력에 따라’ 제한되는 것이 정당한지를 논의한다.

초등 교사인 정용주는 가상의 빈곤 가정 학생의 예를 들어 그 학생은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의 문제점과 능력주의 비판의 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전 학벌없는사회 활동가이자 정치학자인 채효정은 ‘학벌은 끝났는가?’라고 물으며, 신자유주의의 변동 속에 ‘학벌 자본’의 가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학벌없는사회 운동이 놓친 것을 반성하고 시장화와 계급 재생산을 추동하는 능력주의의 흐름을 고찰한다.

2부 ‘능력주의는 왜 해로운가’는 사회 여러 영역에서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다룬다. 박권일의 글은 ‘공정성 내전’과 ‘혐오 담론화한 능력주의’ 등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양상을 짚어 낸다. 그는 능력주의에 관한 네 개의 질문을 통해 능력주의 비판이 왜 필요한지 밝히며, 능력주의로 가장한 세습주의와 지대 추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이중의 과제를 제시한다.

노동운동가인 김혜진은 능력주의가 성과급제 등으로 일터에서도 전면화되고 있고 시험만이 아닌 직무 위계와 차별, 성과 경쟁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노동에서의 능력주의 문제를 노동자 집단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의 관점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의 김혜경·문종완은,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사태 당시 표출된 엘리트주의가 의사들이 학교교육에서부터 내면화한 능력주의 논리로 인한 것임을 지적하며, 능력주의가 공공성과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 이유림은 디지털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능력주의적 실천과 서사를 검토하여, ‘청년 담론’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으로서 성공하기를 요구받지만 동시에 차별받는 청년 여성의 모순된 삶의 조건이 능력주의를 선망하게 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적 전망을 넘어 능력을 규정하는 권력과 자원을 분배하는 기준에 정치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소수자들에게 능력주의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홍세화의 ‘닫는 글’에서는 부르디외가 말한 ‘지적 인종주의’ 개념을 소개하며, 불평등과 그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교육과 사회에 해악이 된다는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가장 교묘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인종주의로서 능력주의를 극복해야 할 이유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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