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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역경을 극복한 자의 ‘빛남’
[정재형의 씨네로그] 역경을 극복한 자의 ‘빛남’
  • 교수신문
  • 승인 2020.12.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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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순수한 삶의 자세가 감동을 주는 영화
음악에의 몰두가 구세주임을 보여줘
이미지=네이버 영화

세상은 언제나 시련을 극복한 자의 것이다. 스콧 힉스(Scott Hicks) 감독의  「샤인 Shine」(1996)은 실존 음악가 데이빗 헬프갓(David Helpgod)의 성장과정과 역경을 극복해간 기구한 에피소드를 그린 호주 영화다. 그는 천재 음악인으로 성장하다가 사고로 인해 정신이상이 된 후 음악을 오랫동안 잃어버린다. 병원에서 다시 음악의 감성을 회복한 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뛰어난 연주가로 복귀한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이 영화를 볼 때는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들을 새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서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준 음악선생은 그를 학교에 보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열정을 억누른 인물은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완고한 유태인 아버지는 아들이 가족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학을 반대한다. 율법과 가족의 화목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사랑은 데이빗에겐 시련이지만 부모로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으로 유학가려던 첫 번째 시도는 좌절되고 뒤이어 영국유학의 길에 오른다. 

유학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도망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유학을 가서 데이빗은 계속 편지를 쓰지만 아버지는 한 통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 데이빗의 정서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는 사랑받지 못한 어린애의 전형적인 특색을 닮아간다. 음악이 좋아 그 길을 쫓아갔지만 그 결과 불효자가 된 그의 심정은 찢어지는 듯이 아파왔다. 매일매일을 외로움과 슬픔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음악이 없다면 그는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음악에의 몰두는 바로 데이빗을 구원해준 구세주인 셈이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데이빗의 순수한 삶의 자세 때문이다. 그가 현실의 고통을 받는 이유는 오로지 음악에 미쳐있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한 가지 일에 정열적으로 빠져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한다면 행복한 일이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슬픔과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데이빗의 모습은 순수한 영혼의 상처받은 모습이다. 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순수를 확인하고 거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심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방해했던 힘에 의한 굴복에 대해 가슴아파 한다.   

감독 스콧 힉스의 연출은 다큐멘타리처럼 자유분방하고 거칠다. 그렇다고 극적인 모멘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정식으로 클래식 무대에 데뷔한 그날의 장면연출이다.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그의 무대 복귀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카메라는 어려서부터 그를 지켜봤던 여러 주변인들을 객석에서 하나씩 훑어나간다. 어린 시절의 선생님, 영국유학시절의 노교수, 헌신적인 아내, 어머니, 여동생들. 이어 서서히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정신병을 앓으며 항상 멍청하게 웃기만 할뿐 일상적인 희노애락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던 그가 눈물을 흘린다. 그건 환희의 눈물이다. 역경을 극복한 자의 ‘빛남’이다. 그래서 영화제목은 ‘샤인’이다. 이어 장면은 묘지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의 눈물은 동시에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의미로도 보여진다. 그는 사랑하던 아버지의 냉대를 통해 더욱 가슴아팠던 지난 어둡고 차갑던 시절과 이제 영원히 결별한다. 그 극복과 상실의 즐거움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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