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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도쿄대박사]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 이방인을 연구한다는 것
[김지영 도쿄대박사]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 이방인을 연구한다는 것
  • 하혜린
  • 승인 2020.12.07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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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미술 유학생' 연구하는 김지영 박사

한국 미술의 역사에서는 아직까지 연구되지 못한 인물들이 많다. 특히 식민지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조선인들의 경우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텅 빈 과거는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점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김지영 도쿄예술대 박사(37세,예술학·사진)는 식민지기에 한일 양국을 오가던 근대 유학생들을 연구한다. 굴곡진 근대를 살아온 재일조선인의 다양한 인간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지난 1일 김 박사를 서면 인터뷰했다. 연구자로서 어떠한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주로 관심을 두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식민지기에 미술을 배우러 일본으로 유학 갔던 조선인 미술 유학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귀국 후 활동도 시야에 넣고 있는데,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 재일조선인이 된 인물들도 병행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일 양국을 오가던 근대 유학이 현대에 어떤 모양새로 이어졌는지 보고 있습니다. 

 

△최근 마나베 히데오라는 제1세대 재일 조선인의 작가론을 연구 했습니다. 연구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초현실주의 회화’를 시도했던 화가는 많지 않은데, 마나베는 도쿄 유학시절에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전위미술 중 하나였던 초현실주의를 시도했어요. 
그는 1990년대 연구에서 언급된 바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름과 작품 제목 정도밖에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타 조선인 유학생들과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존재가 궁금했고, 기억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의 한 미술관 도록에서 그의 사진을 발견하게 됐고, 전시를 주최한 일본인 학예사와 저희 학교 일본인 선배의 도움으로 유족을 만나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나베는 흑백논리에 따라 친일파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로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근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마나베를 친일파라고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 목적이나 대단한 이익을 위해 친일행위를 한 게 아니니까요. 물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친일의 범주로 넣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 근현대 연구자라면 그 시대의 복합성을 아시기 때문에 더 넓은 시각으로 봐 주실 것 같습니다. 
마나베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살다 간 인물인 줄 몰랐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게 됐지요. 마나베는 주변 사람, 심지어 아들에게까지도 조선인임을 밝히지 않았을뿐더러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손수 남긴 기록이나 그림 속에서 일본의 패전을 가슴 아프게 회고하는 자기 인식이 확인되었어요. 
종래의 친일 화가들의 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태평 전쟁을 성전으로 미화하거나, 선동하는 그림을 (타의 혹은 자의로) 그린 친일 화가들의 그림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권력 앞에 굽실거리거나 봉사하는 듯한 모습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일본인으로 동일시하고, 가슴 아파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마나베와 같은 사람들이 발굴, 연구된다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마나베와 같은 근대 화가들이 발굴되면 조선인이 유학 시기에 구사했던 화풍, 일본 미술가와의 관계 등 양국 간 미술교류가 확인되기에 좀 더 풍부한 미술사적 논의가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제1세대 재일조선인 미술가 연구 영역에서는 이미지화된 전형을 벗어난,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인간상을 확인함으로써 제1세대 재일조선인의 실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이런 경험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하는 구체적인 공감을 통해, 시대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연구방법론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십 년 정도 유학하면서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저와 같은 ‘유학생’의 신분으로 백여년 전에 일본 땅에 있었던 조선인들의 얼굴이 궁금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조선인 미술 유학생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유학생의 전체 상이 파악되지 않던 때라, 각 학교에 산재해 있는 자료나 흔적을 모아서 그들의 규모나 분포 상황, 도일 배경, 수학 내용 같은 것을 통합적으로 한눈에 파악하고 싶었어요. 우선, 학교들을 찾아다니면서 유학생이 얼마나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먼저 연락을 취하고 간 곳도 있지만, 소규모 학교들은 반응이 없기도 해서, 어느 날 불쑥 행정실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가끔 아주 작은 단서들만 가지고 학교나 지역, 유족을 물어물어 찾아가는 때는,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담당한 사건들은 대부분 헛다리 잡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형사가 별로 촉도 없고, 과학수사도 잘 못하거든요. 아마 현존 자료가 많이 없는 테마를 연구하시는 분들은 다 그러하겠지만, ‘계란으로 바위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자주 마주하는 한계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주제의 한계점은, 아무래도 한일 양국에 걸쳐있는 주제고 하필 식민지기라는 가장 민감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양국의 관계 역시 연구에 영향을 줄 때가 있습니다. 화가들의 유족이나 제자, 지인들을 인터뷰할 때, 상대의 국적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말하는 태도에도 조심을 하게 됩니다. 역사관 등 전제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가 가장 조심스럽습니다. ‘재일조선인을 뭐라고 부르느냐’하는 명칭에 대한 문제부터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동반하며 시작합니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은 무엇인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우선 제 가정에서 남편과 딸아이를 잘 연구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일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 미술사 연구 속도를 늦추겠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제 연구에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제1세대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을 계속 발굴해나가고 싶습니다. 저는 대구나 부산 등 지역의 근대미술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이 두 주제에 항상 한국과 일본이 걸려있습니다. 양국이 역사 속에서 만나면서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 흥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계속 공부 해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뒷이야기

김지영 박사는 연구자로서 마주하는 한계점에 대해 가장 먼저 '육아'라고 말했다. 여성연구자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제가 연구자로서 자주 마주하는 한계점은 ‘육아’입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가정생활과 연구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일입니다.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 연구자가 제일 힘들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단지 저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30~40대의 여성 연구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육아는 연구자로서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타지역으로 자료조사를 가야 하는데, 아이를 놓고 가는 게 쉽지 않고, 맡아줄 사람을 구하거나 협조를 구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사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가정이 있거나 아이를 키우는 남성 연구자였다면, 가계에 대한 무언의 책임이나 의무감 때문에 오랫동안 공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통례가 조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식민지기 여성유학생들에 대해서도 연구했던 김지영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식민지기의 미술유학과 젠더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젠더에 따라 목적과 이유가 달랐던 근대기 유학

"당시의 여성의 미술 유학은 선행연구에서 자세히 드러나 있는 대로,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학문에 한해, 주변의 이해와 허가 아래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생 연구로 남녀를 비교를 하자면, 당시 남학생들은 서양화라는 낯선 신문물을 통해 예술적 성취와 예술가로서의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반면 여학생들 대부분은 여성에게 친숙한 ‘자수’를 습득하고, 자격증 취득과 사회적 자립이라는 실용적 목적을 안고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기 미술 유학은 젠더에 따라 유학의 목적과 이유가 달랐던 것입니다. 
젠더가 귀국 후 활동 반경을 규정하는 걸림돌이었다는 것 역시 해방 후 한국의 자수 미술의 전개를 살핀 선행 연구들을 통해 자세히 밝혀졌습니다. 

이미 젠더화되어있는 개념, ‘예술가’

저는 젠더와 예술과의 오래되고도 끈질긴 물음에 대해 페미니즘 미학자인 캐롤린 코스마이어(Carolyn Korsmeyer)의 글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예술’과 ‘예술가’라는 용어는 만들어질 때부터 젠더화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지적입니다. 
‘예술가’는 자수나 뜨개질 등 오랜 시간 가내 미적 영역에서 살던 여성과 구분 짓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고 합니다. 미적가치만을 지닌 고상한 감상품을 만드는 남성 창작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근대미술에서 젠더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는 하나의 기준이 됐기 때문에, 심층의 사회적 질서를 전복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지적입니다. 
여자미술유학의 한계를 규정지은 것은 사회적 인식뿐 아니라 어쩌면 ‘예술’이라는 개념의 근저에 있는 태생적인 남성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과 젠더는 사실 근대 미술 유학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지금도 미술관에 걸려있는 명작들의 대부분이 남성 화가에 의한 것이고, 그려진 대상 중 많은 것이 나체의 여성이라는 지적도 있으니까요. 예술의 생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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