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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진중권, 사랑 없는 사랑을 하다
조국과 진중권, 사랑 없는 사랑을 하다
  • 정영인
  • 승인 2020.12.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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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국립부곡병원장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선 후 반 왕당파의 진보 세력들은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분열한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인 대다수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권력을 잡고 황제로 등극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 격언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국 교수는 보수집단에서 강남 좌파라 불릴 정도로 진보 인사로 통한다. 그를 관통하는 언어는 적어도 법무부장관 후보 청문회 전까지만 해도 빼어난 외모, 명민한 두뇌, 개혁적 사고로 요약되었다. 그를 싫어하는 집단에서는 전형적인 폴리페서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 존재와도 같았던 그가 청문회를 거치면서 드러낸 이중적 가치관은 진보세력이 분열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분열된 진보 세력들이 내리는 그에 대한 극단적 평가는 다름 아닌 ‘조국백서’와 ‘조국흑서’로 상징된다. 그리고 ‘조국흑서’의 중심에는 한때 친구이자 이념적 동지였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있다. 

진중권은 말한다. “조국을 굉장히 신뢰했다. 그는 평소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상징자본을 쌓았다. 예전에 진보진영은 부패나 비리 사건이 나오면 사과나 반성을 한다든지 사과하는 척은 했는데 이번엔 그 기준 자체가 무너졌다. 조국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데 실망해서 돌아섰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친구로서는 용서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이후 행동이다. 그가 진실을 말해야 내가 도와줄 수 있다.”

한편, 대학원에서 조국과 인연을 가졌던 또 한 사람의 고뇌를 소개한다. 조강희 변호사는 한 일간지의 ‘가까이에서 본 조국’이란 칼럼을 통해 고백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나 그를 비난하는 글도 안타깝고, 일방적으로 그를 옹호하는 말도 석연치 않아 불편하다. 어느 순간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다. 이십대에 맺은 인연 때문이다. (…) 이제 그에게는 불같이 뜨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의 잘못이 밝혀져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비난할 사람은 많다. 그가 이십대의 내게 준 삶을 생각하면 나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애통해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느낄 때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과도하게 억압함으로써 정반대의 욕구나 생각을 의식에서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이기적 욕구의 소유자가 이타적인 자선사업가로 되는 경우다. 남에게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심리적 특성은 인간에 내재된 기본적 속성이다. 성숙한 사람은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본능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관인엄기(寬人嚴己)를 지향한다. 도덕적으로 완숙하지 못해 관인엄기가 어려우면 그에 상응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도덕적 과오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고 인식하더라도 그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보다는 궁색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를 앞세운다. 

교수로 대변되는 한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대체로 엘리트에 걸맞은 도덕적 내재화가 부족한 편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 행태를 많이 보인다는 뜻이다. 조국에 대한 극단적 평가는 언행불일치의 위선적 행태에서 기인한다. 조국의 행태가 과연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파렴치한 행위 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유난히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이유는 왕성한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누구보다도 정의의 가치를 강조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현재 겪고 있는 고초는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사랑은 자신과 타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의 말이다. 조국은 한때 자신을 지지하고 사랑했던 친구와 이념적 동지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까. 법학자인 그의 답은 법 이전의 양심에서 나온 고백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사회적 비아냥거림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 그에게 씌워진 이중인격자라는 낙인은 진보로 자처하는 그가 짊어져야 할 업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이다. 지금은 대척점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비판에 열 올리지만 그래도 한때는 좋은 친구이자 이념적 동지였던 진중권과 조국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진중권의 비판은 일리가 있음에도 안타깝고, 과거의 패기를 잃은 조국의 궁색한 모습에서 측은함이 느껴진다. 허물과 흠결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튼다.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 국립부곡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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