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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트럼프 선거’의 요체는 ‘반 민주당 정서’
‘반 트럼프 선거’의 요체는 ‘반 민주당 정서’
  • 박강수
  • 승인 2020.12.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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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백창재 『미국 정치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 352쪽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낙선한’ 트럼프의 7300만표

세계화와 이중경제구조, 미국 정치가 마주한 모순

권한은 강화되고 직무는 좌초하는 ‘대통령제의 역설’

 

 

“문제는 트럼프를 찍은 7300만 명이라고 본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당선자보다 낙선자의 득표가 중요한 선거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미국 전체 유권자의 66%인 1억5980만 명이 투표해 조 바이든이 약 7천989만 표, 도널드 트럼프가 약 7천382만 표를 얻었다. 역대 가장 많은 미국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대선 후보 1, 2위를 만들어 냈다. 백창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트럼프의 표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표들이 트럼프를 찍은 것인지, 공화당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반 민주당 표인지가 이번 선거 결과 해석에서 가장 중요하다”라는 설명이다.

백창재 교수는 지난 9월 출간된 『미국 정치 연구』(사회평론아카데미) 5장 말미에 ‘트럼프 시대’라는 짧은 챕터를 마련해 트럼프의 정치적 실패를 이렇게 요약했다. “트럼프는 유권자 절반은커녕 공화당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했고, 오바마의 유산을 부정하는 것 이외에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이어서 백 교수는 “(그러나) 조지프 바이든이 집권한다 해도 ‘재편의 정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인다. 정권은 교체됐으나 트럼프를 만들어낸 시대의 근본적인 질서는 여전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지난 미국 대선을 복기하고 기저의 구조와 맥락을 묻기 위해 백창재 교수를 인터뷰했다.

백 교수는 미국정치 전문가다. 이른바 ‘미국 연구 3부작’, 『미국 패권 연구』(2009), 『미국 무역정책 연구』(2015), 『미국 정치 연구』(2020)를 썼다. 그는 “이 정도로 트럼프가 선전한 것은 예상 밖”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도 사전 투표 규모와 투표율, 양 후보의 득표수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감상을 밝혔다. 다만 트럼프의 득표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반 민주당 정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의회 선거 결과까지 고려하면 민주당과 바이든이 선전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평했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를 결정하는 ‘반 트럼프 선거’의 핵심 테마는 역으로 ‘반 민주당 정서’였다는 분석이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2020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트럼프는 역사상 두번째로 높은 표를 얻었다.사진=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2020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트럼프는 역사상 두번째로 높은 표를 얻었다.
사진=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 ‘반 민주당 정서’의 다른 이름은 ‘포퓰리즘’, ‘주류 정치의 실패’ 등이 있다. ‘트럼프 시대’를 만든 미국 정치의 본질적 요소는 무엇인가?

"미국 정치를 역사적,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시각들은 세계화에 주목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이 이중 경제(dual economy)가 되었다. 원래는 60년대 제3세계 정치경제질서를 설명하는 데 쓰였던 이중경제 개념이 21세기 미국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 셈인데, 쉽게 말해 미국 경제가 ‘세계화된 부문’과 ‘전통 부문’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세계화된 부문은 IT 등 첨단산업과 금융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부를 창출해 온 부문이다. 대서양 연안, 태평양 연안과 남부 일부 대도시 지역이다. 여기에 부와 인적 자원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다인종, 다문화 중심의 세계주의가 형성된다. 반면 전통부문은 제조업과 농업으로 러스트밸트와 남부 대부분, 중서부, 산악 주 지역이다. 인구 증가율이 감소 추세인 곳이고 백인이 다수다.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

문제는 두 부문의 지리적 분포가 양당의 지지기반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세계화 부문이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이고 전통부문이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다. 즉, 부와 인재가 집중되는 역동적인 성장 지역이 민주당 표밭이다. 단순하게 보면 공화당이 지는 쪽에 있고 민주당이 이기는 편에 서 있는 셈이다."

 

△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과 민주당에 대한 전망은?

"민주당 내부는 복잡하다. 세계화로 초래되는 경제적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다인종, 다문화 속에서 사회적 가치 문제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등, 최근 민주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당분간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 전략가들, 의원들, 행정부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2년 뒤, 4년 뒤를 내다보면 어쨌든 노선이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실용주의적 중도이고 기성세력의 지지 위에 있다는 점, 이번 의회선거에서 민주당 진보파가 고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쉽게 전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이 이겼지만 트럼프를 만들어낸 구조와 제도는 여전하다. 내년 1월 20일 바이든은 ‘트럼프 시대‘의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사진=연합
바이든이 이겼지만 트럼프를 만들어낸 구조와 제도는 여전하다. 내년 1월 20일 바이든은 ‘트럼프 시대‘의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사진=연합

 

△ 『미국 정치 연구』에서 “대통령의 권한에 관한 헌법 조문이 제헌 이래 바뀌지 않았음에도 대통령 권한은 증대되고 확대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대통령의 권한 확대 역시 트럼프 시대를 만든 요소로 볼 수 있나?

"단지 트럼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루즈벨트 이후 현대 대통령의 권력 자원이 증대되어 온 매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종합한 것이다. 현대 국가의 특성상 행정부의 조직과 기능이 거대해졌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백악관 참모조직도 증강됐다. ‘거대한 연방정부의 중심으로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새로운 규범이 국민들 전반에 확산되면서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며 의회를 압박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의회에 우위를 점하려다 보니 의회가 반발해 역효과가 날 위험도 커진다. 실제 20세기 중반 이후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권력자원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으나 대통령직 수행은 일관되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역설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외 현대 대통령 중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전부터 초유의 대선 불복을 시사하며 연방대법원 대법관 자리에 사활을 건 바 있다. 그 결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임명돼 연방대법원 보수 대 진보 구도가 6대3으로 기울었다. 이를 둘러싼 미국 정계의 대치는 막강한 사법부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언뜻 연방대법원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나 대통령의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처럼도 보인다.

"트럼프 지지자의 속셈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연방대법원이 이번 선거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급히 배럿을 임명한 것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거다. 다만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므로 배럿이 앞으로 30~40년 이상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으로 남게 될 텐데, 이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는 우리 식으로 보면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다. 1803년 시작됐다. 제헌과정에서 미국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담은 성문헌법을 만들었고, 이 헌법이 수호되어야 민주주의가 유지된다고 못박았다. 아무리 다수가 원하는 법률이라도 헌법에 위배되면 무효인 셈이고, 이 결정을 누군가는 내려야 하는데 그 역할이 대법원에 간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건국 초기, 다수 폭도로부터 자산가를 보호하기 위해 귀족원을 만들고자 했던 일부 연방주의자들의 의중이 반영된 제도이기도 하다. ‘모두가 평등한 자유주의 사회’라는 명제에 부딪히자 연방 대법원에서 귀족정의 우회로를 발견한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위헌 심사를 하는 헌법기관이 필요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문제는 대법관들이 극히 정치적으로 임명되고, 많은 경우 정치적 판단을 하며, 종종 국민 다수나 의회 내 다수의 뜻과 배치되는 판결을 한다는 점이다."

 

△ 불복 논란으로 투표 못지 않게 개표와 선거제도 자체가 주목 받았다. 유권자 사전 등록, 주 별로 달라지는 선거법, 간접선거 등 복잡하다.

"선거인단 간접선거의 배경은 둘이다. 우선, 미국은 연방제 국가다. 따라서 연방의 대통령을 뽑는 방식에 유권자 직접선거와 연방을 이루는 각 주의 대표성을 반영하는 방식을 혼합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 긴장은 뿌리 깊다. 처음부터 13개 식민 주가 독립을 쟁취한 결과로 건국된 나라이고 제헌과정부터 연방파와 반연방파의 대립이 있었다. 국가주의 대 주권주의(state’s rightism)의 갈등이다. 뉴딜(루스벨트 집권) 이후 연방정부 역할이 확대되고 연방정부가 50~60년대 민권 이슈에 개입하면서 남부를 중심으로 주권주의를 앞세운 반발이 커졌다. 여기에 세계화, 다문화 사회 변화가 겹치면서 토착주의가 덧씌워진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두번째는 권력 분립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선출하게 되면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국민이 선출하는 유일한 권력 기관’이라는 권위를 앞세워 권력 분립 체계의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해 간접선거가 고안됐다.

아울러 선거 관리는 주정부의 권한이고 유권자 사전등록제는 20세기 초 만연했던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 혁신주의자들이 도입하면서 시작된 정치 개혁의 결과다."

 

대법관 임명과 개표 부정을 내세운 트럼프의 선거 불복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
대법관 임명과 개표 부정을 내세운 트럼프의 선거 불복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

 

△ ‘의회 패싱’ 등 대통령의 제도 우회, 비대한 행정부, 양극화되는 의회는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적용 가능한 논점으로 보인다. 미국 정치 연구자로서 한국정치에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나.

"두 가지 예만 들겠다. 19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여소야대, 미국식 표현으로는 분점정부로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국난 극복의 통치력이 약해진다는 이유로 야당 의원 빼내기를 통해 대여를 만들었다. 당시 인위적 여대야소를 비판하며 미국 사례를 이론적 근거로 많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분점정부(여소야대) 상황이 정부의 통치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러한 이유는 정당 단합도가 낮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으나 당시만 해도 여당의원이라고 대통령을 항상 지지하지도, 야당 의원이라고 무조건 대통령 정책에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여소야대는 정부의 통치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으로 거여 상황인 지금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나 더 들자면 2002년 처음 도입된 대선 후보 국민경선이 있다. 미국 대통령 후보 선출방식인 예비선거제를 모델로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제도의 참여 민주주의 증대와 흥행만 고려했지 예비선거제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수많은 논의는 무시됐다. 그 결과가 다크호스였던 노무현 후보의 승리다. 당시 이인제 진영의 미국정치에 대한 무지가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요컨대 다른 나라의 제도나 정치적 변화, 정책 효과를 우리에 적용할 때 그런 것들이 작동한 맥락과 다른 제도, 정책과 상호작용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에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미국 정치 연구자로서는 아직 하고 싶지 않다."

 

백창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백창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사진=백창재 교수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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