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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쓸모있는 연구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쓸모있는 연구
  • 교수신문
  • 승인 2020.11.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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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인지심리학은 심리학 분야 중에서 기초 연구에 해당한다.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일상생활의 통계적 규칙성을 어떻게 학습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예시를 들자면, 지도교수가 일요일에 자주 출근한다는 사실을 어떤 과정을 통해 학습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를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통계학습의 과정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도 몇 번의 경험만을 통해 지도교수가 일요일에 자주 출근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초연구는 참 어렵다. 지금 당장 어떤 쓸모가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인지심리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학문에서든지 기초연구를 하는 연구자라면 나와 동일한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심하게는 응용 연구를 하는 연구자에게서 “이 연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인지심리학자로서 기초연구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 나의 연구 발자취가 인간의 사고 과정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다는 그 학문적 성취감만으로도 연구를 계속할 이유는 충분하다. 가끔은 막막하고 답답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즉각적인 쓰임새가 두드러지지 않는 연구 분야에는 대중의 관심도 자본도 흐르지 않는다. 학문적 성취감만을 바라보고 연구를 하기에는 나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한다. “졸업하고 나면 어떤 진로가 있어?”라는 말에 우물쭈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정말 기초연구는 쓸모가 없을까? 꼭 그 쓸모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연구만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을 컴퓨터에 비유해 이해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컴퓨터 개발에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에 대한 이해가 접목된다. 예를 들어, 통계학습의 기전에 대한 이해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개발하는 데에 쓰일 수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사람 언어의 패턴을 파악해야지만 소비자의 명령을 정확히 이행할 수 있다. 혹은 A 명령 후에는 B가 뒤따른다는 확률적 규칙성을 파악한다면 A 명령 수행 직후 B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여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제품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의 편리성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 패턴과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COVID-19 백신이나 인공지능 스피커나 세탁기나 교육 프로그램 등 사람을 살리고 즐겁게 하고 편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가 쌓여 만들어졌다.

어쩌면 기초연구의 가시적 쓰임을 요구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수 있다. 기초연구는 다양한 기술을 만날 때 그 쓰임이 무궁무진하다는 매력을 갖는다. 기초연구의 의미는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홍인재
홍인재

 

 

 

 

 

 

연세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국연구재단 글로벌박사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통계 학습의 인지적 기전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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