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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 교수신문
  • 승인 2020.11.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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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주 지음 | 한뼘책방 | 248쪽

1990년의 마지막 날, 1차 걸프전을 앞두고 이메일로 배포한 글에서 조지 레이코프는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보수 언론이 임박한 전쟁을 은유를 통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쓴 글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글은 전쟁을 막지 못했고, 그 결과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정의의 전장’으로 나가 죽음을 맞이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명확한 사례였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 이론’으로 미국 정치 담론을 분석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이론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이제 ‘프레임’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일상어가 되었다. 이는 프레임이 한국의 현실 분석에도 그만큼 유용하다는 말이고, 한국 사회에 은유가 그만큼 넘쳐난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프레임 전쟁이 한창이다. 이 전쟁의 목표는 영토 같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정의’, ‘자유’, ‘평등’, ‘공정성’ ‘차별’ 등 가치를 담은 개념의 해석을 차지하는 데 있다. 이른바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은 개념의 해석을 둘러싼 전쟁이다. 그리고 개념 전쟁은 곧 프레임 전쟁이다. 개념의 해석이 프레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레임과 은유가 둘 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구조물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프레임 전쟁은 곧 은유 전쟁이다.

이 은유 전쟁에서 보수가 크게 성공한 사례가 바로 ‘세금은 폭탄’ 은유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준비하던 2004년 말에 처음 언론에 등장한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는 과세 대상인 부동산 초부유층 2퍼센트뿐 아니라 그와 무관한 일반 서민의 마음까지 폭넓게 사로잡아 반대 여론 확산의 기폭제 노릇을 하였고, 급기야 정권의 위기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우선 도리질부터 치는 것도 ‘세금은 폭탄’ 은유의 생명력이 여전하기 때문이고, 여든 야든 누구도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유는 단지 수사적 효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사고와 삶을 실제로 지배한다. 우리가 은유의 의미와 기능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종 프레임과 은유가 경합하는 전장에서 살아남게 해줄 은유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한바,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가 바로 그 요구에 답하는 데 있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 전쟁이 어떤 현상을 해석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은유 체계의 상이함에서 비롯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인 ‘교육’,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논쟁에 어떤 은유가 깔려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진행되는 그의 분석을 따라가면, 주요한 사회 영역에서 한국인의 사고와 삶을 지배하는 은유들을 알고 그 의미와 기능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 프레임, 은유 전쟁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진보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런 저자가 한편으로 아쉬워하고 한편으로 경계하는 것이 프레임 또는 은유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진보의 이해 부족이다. ‘세금은 폭탄’을 다시 한 번 예로 들자면, 진보 쪽에서 “세금은 폭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프레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주장일 따름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자꾸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듯이, 프레임에 대한 부정은 오히려 그 프레임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진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보수의 프레임을 부정할 게 아니라, 진보의 가치를 담은 대안 프레임, 대안 은유를 제시해야 한다. 즉, ‘세금은 폭탄’ 대신에 ‘세금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공동 자산’ 은유를 내세워야 한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이의 품격 있는 유머와 촌철살인의 비유를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진보의 대변인을 잃었다며 많은 이들이 상실감에 젖었다. 맞는 말이지만, 오해는 말아야 한다. 그가 진보의 대변인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머와 비유에 능한 수사법의 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대중이 공감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ㆍ경험과 연결해 표현할 줄 아는 은유의 달인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머와 비유였다.

진보의 정치적 무능은 진보 언어의 부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수의 프레임에서 잘못된 점을 찾는 데 급급하고, 그 이유를 대중에게 논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계몽주의에서 한국의 진보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진보는 진보의 가치를 진보의 언어, 진보의 은유로 소통함으로써 그에 공감하고 가치 실현에 함께할 정치적 주체를 확보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여정, 더 나은 사회, 더 살 만한 세상을 이루려는 실천 과정에서 좋은 동행자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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