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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실험실의 진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 교수신문
  • 승인 2020.11.3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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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지음 |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60쪽

과학지식이 태어나는 장소 ‘실험실’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최초의 책. 우리의 일상은 실험실에서 태어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코로나19와 부족하나마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진단키트와 마스크 필터, GPS, 날마다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합성섬유와 유전자변형 식품, 휴대폰,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항생제와 각종 치료제, 줄기세포, 스마트카, 인공장기까지.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의 고향은 실험실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8할은 실험이고 실험의 8할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실험실은 필수적이며 의학, 농학, 수의학, 약학, 간호학, 보건학 연구도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험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른다. 우리가 배우는 과학지식은 대개 이미 만들어진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 교수가 나섰다. 실험실에 대한 저자의 오랜 관심과 연구가 그의 수업을 들었던 박한나 학생의 그림을 만나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최근 시민과학의 리빙랩까지 두루 돌아보며, 그동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과학지식을 생생하고 사실적인 그림과 함께 맥락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실험실의 진화』에서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수록된 그림이다. 디지털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종이와 펜만으로 그린 흑백의 세밀한 그림들은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린이 박한나는 뉴턴과 갈릴레오의 방에서 바라보는 창문 밖 풍경을 그리기 위해 현재 박물관이 된 뉴턴의 집에 방문했던 관광객들의 리뷰 사진들을 조합하고, 갈릴레오가 살던 집 주변 거리를 구글 지도로 탐색했다. 또한 실제로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해양생물들을 그리기 위해 세계 어류 도감과 프랑스 해양생물 보호 사이트, 심지어 프랑스 낚시꾼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직접 생물 목록을 작성하고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고증에만 충실한 그림들은 아니다. 벨 연구소의 ‘무한한 복도’를 나타내기 위해 네 페이지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생화학자 로제 기유맹의 노벨상 수상 업적인 TRF(Thyrotropin Releasing Factor. 갑상선자극호르몬 방출 인자)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라는 브뤼노 라투르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해당 논문을 잘게 잘라 붙이고, 파스퇴르가 푸이르포르의 한 농장에서 수행한 탄저병 백신 실험은 실험실에서 이미 검증된 백신의 효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시연이었다는 것을, 연극 무대의 전면과 뒤편로 표현한다. 이렇게 철저한 자료 조사와 뛰어난 구성력이 바탕이 된 탄탄한 그림들은, 책의 곳곳에서 때로는 텍스트를 보완하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보는 재미를 선사하며 독자를 실험실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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