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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취약성
백인의 취약성
  • 교수신문
  • 승인 2020.11.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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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디앤젤로 지음 |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88쪽

 

‘백인의 취약성(White Fragility)’이라는 개념은 이 책의 저자인 로빈 디앤젤로가 고안한 것으로, 옥스퍼드사전에서 ‘2017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을 만큼 주목받았다. 2018년 출간 직후부터 현재(2020년 11월)까지 2년 넘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 독자층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지만, 조지 플로이드 과잉진압 사망 사건 이후 인종 논쟁이 양극화된 분위기에서는 호평과 악평을 모두 받았다. SNS와 아마존 리뷰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상당수는 책을 읽지도 않은 이들이다)이 이 책에 소위 ‘별점 테러’를 가하고 있다. ‘백인의 취약성’이 어떤 개념이고 이 책에 무엇이 담겨 있길래 이토록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일까?

로빈 디앤젤로는 백인성과 인종 담론 연구자이자 고역스러운 “인종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주로 백인 청중을 이끄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인종 다양성 훈련사로, 미국에서 인종 형평성 훈련에 관심이 있는 거의 모든 백인 조직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온 유명하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디앤젤로는 수많은 다양성 워크숍 현장에서 인종주의 체제와 그에 가담하는 백인의 행태를 거명하고 문제 삼는 훈련사의 지적에 백인 참가자들이 드러내는 갖가지 방어적 반응을 지켜보면서, 저런 반응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오랜 기간 숙고한 끝에 ‘백인의 취약성’ 개념을 고안해냈다. 그는 이 책을 시작하며 “나는 백인이며 이 책에서 백인의 집단역학을 다룬다”고 밝히고, 자신이 정의한 백인의 취약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경험과 사례를 들어 미국의 인종주의를 분석하며 백인으로서 같은 백인 독자들에게 백인의 취약성을 직시하게끔 독려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개념은 ‘백인이 자기네 인종 위치에 대한 도전을 받을 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보이는 방어적 반응’을 의미한다. 백인의 반응은 분노, 모욕감, 수치심, 죄책감 같은 감정의 형태일 수도 있고, 논박하기, 부인하기, 회피하기, 울기 같은 행동의 형태일 수도 있다.

미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이념에 기초해 건국되었지만 그 동안 미국에서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정체성은 줄곧 눈에 띄게 비슷했다. 그들은 백인, 남성, 중간계급 혹은 상층계급, 비장애인이었다. 권력의 자리에서 내리는 결정은 그곳에 없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백인의 취약성』은 인종주의와 가장 연관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종주의 논의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백인성을 논의의 중앙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인종주의의 여러 전제, 인종주의와 관련한 다양한 개념 등을 풍부한 근거와 사례로 풀며, 백인의 취약성이 나타나는 양상과 백인의 취약성의 기능,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의 인종주의 체제를 분석한다. 이어서 인종주의 해소를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 위한 여러 전략과 지침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자신과 같은 백인(저자는 의도적으로 ‘우리’라고 지칭한다)에게 함께 더 나아지자고 요청한다.

한국에서 백인의 취약성은 다소 낯선 개념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인종 문제가 큰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인의 취약성이 주는 중요한 교훈, 소수자가 차별을 말할 때 방어적 행동으로 기존의 차별적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에서는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이미 한국에서도 인종, 젠더, 장애, 지역 등의 문제로 다양한 차별이 존재해왔고, 이로 인한 사회갈등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의 소수자들이 차별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백인의 취약성』은 이런 측면에서 한국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차별 문제와 무관한 ‘선량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가 호소하는 차별 이야기에 취약해질 것이다. 한국인, 그리고 한국에 사는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등은 이런 사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차별적 구조 안에서는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차별적 구조와 관계를 맺게 된다. 저자가 ‘백인’과 ‘우리’라고 지칭하는 인종 집단에 나 자신을 대입하고 나의 인권 감수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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