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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보다 무서운 코로나19… 예외헌법과 기본권 제한을 논하다
헌법보다 무서운 코로나19… 예외헌법과 기본권 제한을 논하다
  • 정민기
  • 승인 2020.11.30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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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 헌법학자, 코로나19시대에 헌법과 민주주의 주제로 토론
“기본권과 신속 방역 사이에서
비례성원칙과 야당 의견 청취가 필요“
사진 = 지난 25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제학술회 캡처
사진 = 지난 25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제학술회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방역이라는 이름 아래 일부 제한됐다. 광화문에는 집회를 금지하는 차벽이 세워졌고, 종교시설 집합 제한 명령이 떨어졌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일과 표현·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일 중 무엇이 먼저일까.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코로나 위기상황에 ‘긴급사태’를 선언하거나 ‘긴급권’을 발동했다. 한국 헌법에도 대규모의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평상시의 입헌주의적 통치기구로서는 대처할 수 없는 긴급사태에는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예외적인 권한이 부여되는 ‘국가긴급권 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긴급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왜일까.

정부는 긴급권을 발동하는 대신, 일반 법률들을 근거로 코로나19에 대응해왔다. ‘코로나3법’으로 불리는 ‘감염병예방법·검역법·의료법’이 대표적이다.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독일 정부는 ‘감염병보호법(Infektionsschutzgesetze)’을 근거로 종교 행사를 금지했다. 그러자 독일의 한 카톨릭 성당은 소송을 제기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베를린 행정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헌법격인 기본법과 감염병보호법 사이에서, 법원이 후자의 손을 들어준 이유와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법 대신 감염병보호법 인정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국가는 방역에 손을 놓고 ‘집단 면역’을 형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국가는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강력한 규제를 시행했다. 한국과 독일은 기본 법률을 발 빠르게 개정하고 이를 근거로 효과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남아있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법률적인 문제들은 어떤 기준으로 적용됐을까.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았을까. 

지난 18일과 25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고려대 정당법연구센터가 ‘코로나19와 헌법’이란 주제로 한·독 국제학술회의(사진)를 열었다. 한국과 독일의 저명한 헌법학자와 정치학자가 대거 참여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총 4개의 주제로 8명의 연구자들이 발제를 맡았다. 논의된 주제는 △코로나19와 예외헌법 △코로나19와 기본권제한 △코로나19와 민주주의 △코로나19와 권력분립이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로마에서 시작된 ‘한시적 임기의 독재관제도’를 설명하며, 현재 ‘긴급사태’로 불리는 제도가 원래는 나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었으나 현대의 많은 정치지도자가 이를 오용·남용해 상시적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 한국과 독일이 긴급권을 발동하지 않은 이유는 두 나라 모두 긴급권을 남용한 독재체제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례성원칙과 기본권 침해 허용

이어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감염병예방법이 각종 방역 조치의 법적 근거가 돼왔으나, 이 법률조항들에 근거한 조치들은 ‘비례성원칙’에 비추어 통상 수인할 수 있는 기본권제한의 한계를 넘는다”라고 지적했다. 비례성원칙이란 어떤 행정 명령이 유발시키는 침해가 그 행정 명령으로 인한 이익효과보다 크지 않고 최대한 적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벼룩을 잡겠다고 집을 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원인도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 위기상황에서 비례성원칙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예외상황임을 인정하고 다른 기준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라고 의견을 공유했다.

독일 예나대학교의 미하엘 브레너 교수는 “이번 코로나 사태는 ‘불확실성’이 강하고 파급 범위가 넓다는 특징 때문에 독일법원에서 비례성원칙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즉 올해 초에는 비례성에 합치한다고 보았던 제한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례성을 위반한다고 판단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치사율과 감염자 증가율 등의 지표들이 정확해지면서 불확실성이 줄었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도 이에 맞춰 변화했다는 것이 브레너 교수의 설명이다. 이어 브레너 교수는 “결론적으로 비례성원칙은 현재까지 코로나19 시기의 도전을 잘 통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승주 한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점은 감염병환자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다른 이에게 감염시킬 경우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심사에 기존의 원칙보다 더 실효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야당 의견 배제될 우려

윤정인 고려대 연구교수(법학연구원)는 “코로나 위기 동안 의회에서 각종 법률이나 예산이 심의과정을 생략하고 속전속결로 표결에 부쳐져 통과되는 경향이 있다”며 “화상회의나 원격표결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최소한의 심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윤 교수는 야당의 견제역할이 약화된 점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민들이 집회를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나 견제수단 확보가 어렵다”며 “이번 추경예산 통과시 야당을 배제한 표결도 문제였다”라고 지적했다.

박진완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한국은 단원제인 반면 독일은 양원제”라며 “이 때문에 독일은 한국보다 더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독일은 위기상황에서도 입헌주의와 헌법이론적 토대 위에서 고민하는 반면 한국정부는 물론 코로나상황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지만 헌법이론적 측면에서의 고민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안효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올해에는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지만, 시의적인 주제를 가지고 학술교류를 이어갈 수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며 “앞으로 한국 법학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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