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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에‘서울대’를세우자
영·호남에‘서울대’를세우자
  • 교수신문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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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9 20:36:28
이제환 / 부산대·문헌정보학과

지난 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부각되었던 ‘지방대 문제’가 근자에 들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당시 여론이 떠들썩하자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고, 대통령의 관심 표시에 교육부는 대책 마련에 부산하였다. 봄바람을 타고 시작된 한바탕 소동은 가을바람이 불 무렵 ‘지방대학육성방안’이라는 보고서가 완성되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도 지방대는 여전히 ‘위기’에 놓여있다. ‘방안’이 잘못되었는지 실행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예의’ 예산 탓인지, 교육부가 마련한 ‘방안’의 행방이 묘연하다.

당시 교육부의 보고서는 지방대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위기극복을 위한 처방을 다양하게 담고 있었다. 교육부는 지방대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실체’를 학생이탈로 인한 공동화 현상, 재정난으로 인한 교육환경 악화, 취업률 부진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우수 고교졸업생의 서울소재 대학 선호로 인한 수준하락 등으로 진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지방대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 졸업생의 취업촉진 방안, 우수 고교졸업생의 유치 방안,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였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


그러나 지방대 교수인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대의 위기를 보는 교육부의 시각은 지극히 편협하고 단견적이었다. 교육부가 파악한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대가 앓고 있는 중병의 ‘가시적 증세’에 불과하지 ‘중병의 실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방대 진짜 ‘위기’는 이를 초래하고 조장해 왔던 교육부가 자신의 과오는 덮어둔 채 단견적인 미봉책으로 위기를 더욱 구조화하는데 있으며, 위기를 방조해온 지방대의 운영주체들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상실함으로써 위기를 더욱 고착화하고 있는데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가 앓고 있는 중병은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그릇된 사회구조와 가치체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생적 질병을 악화시켜 지금과 같은 중병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교육부의 단견적이며 일관성 없는 대학정책이었다. 교육부에 묻는다. 서울대의 눈치나 보고 서울소재 사립대의 로비에 타협하여 지역 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해온 주체가 누구였던가? ‘설립준칙주의’라는 터무니없는 정책으로 지방대의 마구잡이 증설을 조장한 주체가 누구였던가? 지방대 교주들과 타협하여 무차별한 증원을 허가하고 ‘종합대학화’를 조장함으로써 ‘특성화’를 방해한 주체가 누구였던가?

그러나 위기의 윈인을 어찌 그릇된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지방대의 위기가 지금처럼 고착화된 데는 지방대학인들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지방대의 운영주체와 교수들에게 묻는다. 교육기관의 이념을 추구하기보다는 ‘대학장사’에 몰두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던가? 쥐꼬리만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현실에 안주하거나 대학의 발전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추구에 집착하지는 않았던가?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교육부의 눈치나 보며 소아적인 이전투구를 일삼지는 않았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다.

지방에서 태어나 이류시민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지방인들은 지방대가 건실해지려면 대학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지방대의 육성은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지, 지방대의 몇몇 분야를 특성화하거나 일시적인 재정지원을 강화하거나 근시적인 우수학생 유인책을 시행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너나 할 것 없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평범한 사실을 우리의 교육정책입안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 지면을 빌어 나는 지방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지방대를 발전시키기 위한 거시적 방안의 으뜸은 국가 중추기능의 지역 분산 정책이다. 현재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행정, 경제, 문화, 정보 기능의 지방 이전은 지방대의 발전 나아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경복궁을 옮길 수는 없지만, 정부종합청사나 한국은행의 지방 이전은 ‘국민적 합의’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방대 발목잡는 서울대


국가 중추기능의 지방이전이 장기적인 처방이라면, 응급 처방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이 ‘지방대 육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이 또한 지방대 문제를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되어 왔다. 가칭 ‘지방대학육성특별법’의 제정은 근본적인 처방은 아닐지라도 지방대를 지금의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더불어 필요한 것은 원인제공자에 대한 개혁이다. 교육부의 개혁이 없이 지방대의 ‘제자리 찾기’는 불가능하다. 교육부의 개혁은 교육부가 시행해온 각종 대학정책에 대한 검증과 재고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지방대의 몰락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각종 정책들, 가령, ‘설립준거주의 정책’, ‘편입학 정책’, ‘종합대학화 정책’ 그리고 최근의 ‘BK21 정책’ 등은 그 추진과정과 결과에 대한 엄격한 검증과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교육정책실명제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부가 지방대의 발전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 최소한 한두 개의 ‘서울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발상을 가져야 한다. 설립이라고 해서 서울대의 분교를 지방에 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소재 국립대 혹은 사립대 중에서 ‘능력이 건실한’ 대학을 영남과 호남에 한 개씩 선정하여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자는 이야기다. 그런 후에 지금 서울대에 쏟아 붓고있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의 절반만 쏟아 부어보자. 그 성과는 놀라울 것이다. 어차피 ‘선택과 집중’이 교육부의 논리가 아니던가!

또한 지방대의 발전에 근본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서울대’의 존재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여야 한다. 현 상태에서 서울대를 국립대으로 유지하는 것은 명분도 실익도 없다. 교육부 관료들은 서울대 재학생 중에서 저소득층 가계 출신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있는가? 만약, 서울대가 ‘가진 자’들의 ‘신분 세습’을 위한 기관으로 변질되어 있다면, 교육부는 국민의 혈세를 ‘특권층 양성’에 쏟아 붓는 잘못된 정책을 서둘러 시정해야 한다.

지방 국립대를 무상교육 체제로


더불어 나는 기존 지방국립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선, 지방소재 국립대의 규모와 지원에 있어 지금까지의 획일적인 평등주의(?)는 지양하여야 하며, 지역의 인구와 산업 규모에 기초한 차등적인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더불어 지방국립대의 경쟁성 확보를 위해 지금의 ‘등록금’은 단기적으로는 인하하고 장기적으로는 무상교육 체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소재 대학으로 자녀들을 진학시키고자 하는 지방인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지방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지방에 많은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대학을 지방에 설립 또는 유치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 인재를 영입하고자 하는 일류 기관들이 앞다투어 지방으로 몰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지방대의 문제는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과 지방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적 과제로 접근할 때 비로소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여러 방안은 이미 제시되었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러한 방안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통치자의 강력한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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