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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배 교수, 《피터버러 연대기》로 본격적인 고‧중세 영어 시리즈의 서막 열어......
박영배 교수, 《피터버러 연대기》로 본격적인 고‧중세 영어 시리즈의 서막 열어......
  • 이혜인
  • 승인 2020.11.2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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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버러 연대기 | 저자 박영배 | 한국문화사 | 272쪽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앵글로색슨 시기 및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11세기 중엽부터 12세기 중반까지 잉글랜드의 역사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사료史料로 평가받고 있다. 연대기를 제외하면 고대 영국 시기에 당시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료로 노섬브리아 왕국에 있는 재로우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던 비드Bede가 쓴 《영국민 교회사》가 있다.9세기 말 웨섹스 왕국의 엘프레드 왕에 의해 국민정신의 함양과 학문의 부흥이 일어났는데, 엘프레드는 당시 일어난 여러 사건과 법령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각종 전투와 전쟁을 치른 왕들에 관련된 모든 일을 당시 쓰인 고대영어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앵글로-노르만인 태생의 연대기 사학자인 제프리 가이머G. Gaimar는 이것이 연대기가 쓰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엘프레드 왕은 성직자들의 라틴어 교본인 《사목지침서》를 손수 고대영어로 번역하여 잉글랜드의 각 지역에 있는 여러 수도원과 법정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앵글로색슨 연대기라고 칭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일관된 기록물이 아니라 하나의 비슷한 주제 아래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필사생이 기록한 텍스트가 모여 이루어지고, 여기에 각 지역의 특성과 사건이 상당히 가미되어 쓰인 다소 복잡한 텍스트상의 사료라고 할 수 있다.연대기를 살피지 않고서는 로마 제국의 퇴각 이후부터 노르만 정복 사이의 잉글랜드 역사를 알 방법이 없다. 

고대영어 학자인 니콜라스 호우N. Howe는 연대기와 교회사를 '앵글로색슨 인의 역사상 위대한 두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잉글랜드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많은 기록과 연보가 남겨지기 시작하였으나, 위에 언급한 두 문서를 제외하면 원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현존하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 후기에 나온 작품에 스며들어서 작성되었다. 연대기는 이런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연대기에서 엿볼 수 있는 당시의 역사는 이것을 편찬한 필사생들이 직접 목격한 내용은 물론, 많은 경우에 다른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초기의 연대기 작가들이 기록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연대기는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해 온 영어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로서도 매우 귀중하다. 한 가지 예로, 앵글로색슨 연대기 가운데 하나로 현존하는 《피터버러 연대기》는 표준 고대영어로 된 문어체文語體 언어로 사건을 기록하다가 1131년을 기점으로 중세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11세기 말과 12세기 중엽 무렵까지 쓰인 초기 중세영어의 모습을 이 연대기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연대기 학자이기도 한 호우는 연대기가 집필되던 당시 앵글로색슨 인의 정신도 알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한다. 

그는 《로마: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의 수도》에서 연대기에 쓰인 많은 기록에서 앵글로색슨 인들이 로마를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겼다고 말하면서, 로마와 로마의 역사는 연대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전거典據로 언급된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기원후 1-2년의 기록에는 로마제국의 첫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63 BC-AD 14)의 로마 통치 42년째 되는 해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고 동방으로부터 세 명의 점성가가 그리스도를 경배하러 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앵글로색슨 연대기》 가운데 하나인 《피터버러 연대기: 1070-1154》 필사본을 고/중세영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연대기 전반에 대한 해설과 《피터버러 연대기》의 개요, 언어변화 및 특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한편, 연대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건과 수많은 인물에 대한 연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범위한 사료를 참고하여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 

이 책의 말미에는 연대기 필사본(서문 포함)과 필사본의 복본 일부 및 윌리엄 정복왕(1세)의 왕실 계보를 첨가하여 중세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 왕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역자는 20여 년 전 토론토대학에서 연구하던 당시, 도서관에 소장된 연대기 필사본을 연구하면서 이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집필하는 동안, 언젠가 필사본을 번역하여 고대 문헌을 연구하려는 국내 연구자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주려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필사본은 단 한 권이 아닌 7개의 필사본과 2개의 낱장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사료史料 또한 필사생에 따라 그 기록과 문체 및 내용이 상이한 부분이 많았다. 이처럼 이본異本의 합본 성격을 지닌 필사본은 예수 탄생부터 로마가 잉글랜드를 점령한 역사적인 사실에서 출발하여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중세 영국 사회의 12세기 중반까지의 영국의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사료였다.

역자는 이들 필사본 가운데 특히 피터버러 수도원에서 기록된 《피터버러 연대기》에 주목하였다.

 이 연대기는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초기 중세 영국의 역사와 문물, 민중의 세시풍습 등,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후기 고대영어와 초기 중세영어에 이르는 언어변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필사본을 연구하는 구미歐美 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되어왔다.

 영어사를 전공한 역자는 이 필사본을 국내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한 연대기 학자들의 필사본 관련 연구 사료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퇴임한 이후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를 참고하여 본격적으로 번역에 착수해,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연대기 연구의 권위인 클라크(Clark 1970) 및 로시츠케(Rositzke 1951)의 귀중한 자료는 이 책을 펴내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피터버러 연대기》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수도원 화재 이후 새롭게 편집된 연대기에 엿보이는 언어상의 가치 또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후기 고대영어와 초기 중세영어가 뒤섞여 쓰인 언어변화의 모습을 처음으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 변화는 물론, 어형과 구문의 변화,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영향으로 받아들인 정자법正字法으로 인한 발음의 변화 또한 이 연대기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이다.아무쪼록 이 연대기를 통해 중세 잉글랜드 왕실과 역사, 문화는 물론 민중의 세시 풍습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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