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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들
'해학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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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은 간데 없고 코미디만 난무해

현대사회는 해학이나 풍자가 아니고선 담아내기 어렵다. 현대인의 삶 자체가 뒤틀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시대 예술에선 “해학의 껍데기만 남고 정신은 비어버렸다"는 비판들이 다수다.

요즘 국내 연극계는 ‘지하철 1호선’, ‘트랜스 십이야’, ‘용띠위에 개띠’, ‘날보러와요’ 등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다. 여기선 현 사회에 대한 ‘비틀기’가 엿보인다. 하지만 웃음을 자아낸다고 다 해학적인가. 조태준 배제대 교수(연극연출)는 “현대 연극엔 소비적인 웃음만 있다”라고 말한다. “전통극이 민초의 정신으로 권력을 비틀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인간사회의 내면과 위선을 드러내야만 해학적 극이라 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한국무용의 미의식은 정병호 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해학’에서 찾아진다. 탈춤, 승무, 살풀이춤 등 전통 민속무용은 모두 궁중무용의 형식에서 벗어나 서민의 애환과 생활을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무용도 그런 미의식을 가졌는가. 물론 현대무용도 비대칭적인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움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최근 홍승엽 안무의 ‘빨간부처’는 ‘부처’와 ‘똥’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 이미지를 통해 현대불교에 대한 해학미를 잘 나타냈다. 하지만 “이를 제하고 국내 무용가들 중 해학적인 걸 표현하는 안무가가 거의 없다”는 게 무용평론가 장인주 씨의 지적이다. 주로 서구현대무용의 형식을 수용하다보니 야기된 결과라는 비판이다.

영화는 그 일천한 역사 때문에 해학 논의에서 배제된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에 따르면 “자기미학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해학이 있을 수 없다"는 것. 해학처럼 보이는 웃음과 비틀기의 대명사인 코미디, 패러디 영화들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사)는 “‘위대한 유산’, ‘색즉시공’, ‘낭만자객’, ‘황산벌’ 등은 천박한 웃음만 남겼다”라며, 무엇보다 “약자의 강자에 대한 반발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즉, 이지메와 왕따가 웃음의 요소로, 해학은 완전히 왜곡돼 약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돼버렸다는 비판이다. 

건축은 ‘어긋남’이나 ‘비틀기’를 추구하기에는 다소 보수적이다. 구조물 자체가 완결성을 요구하기 때문. 한영기 계원조형예대 교수(건축이론)는 “미국의 팝아키텍처나 프랑스의 ‘말하는 건축’에선 건축의 풍자와 일탈과 해학이 드러나지만, 국내 건축에선 해학미를 거의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국내에서 건축의 완결적 요소를 흩뜨리는 요소가 가끔 삐져나오지만, 그건 전문건축가의 건축이 아닌 미숙함일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 몇몇 건축가들이 생활공간 구석에 주거자가 ‘빙그레 웃음 지을 수 있도록’ 숨겨놓는 것들이 있다.

해학이란 기본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고 그건 우리사회에 대한 적절하고 센스있는 비틀기에 기반한다. 그런데 그 목표는 현세의 긍정일까 아니면 일탈일까. 비판을 위한 비판, 웃음을 위한 웃음을 넘어서는 해학이 생겨나기 위해선 위의 질문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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