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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평가를 하겠다”며 교협 임원단이 찾아왔다
“중간평가를 하겠다”며 교협 임원단이 찾아왔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11.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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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총장 4년(1994.9~1998.8)의 회고 ②
현승종 전 총리를 추모하며 ... 이사장과 총장의 대학이야기
현 이사장의 "이 늙은이가..." 하는 말에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현승종 전 국무총리(사진 가운데)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현승종 (건국대)이사장과의 아침 식사 후에도 건국대 총장직 취임 여부를 두고 밀고 당기기가 꽤나 지속되었다. 나는 내가 건국대 총장으로 부적합하다는 논리를 역사적, 현실적 이유를 들어 강변하였다. 또 나의 능력 면으로 봐서도 불가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끄떡도 안하시던 현 이사장께서는 드디어 전가의 보도를 꺼내셨다. “여보시오, 윤 장관, 당신이 교총 회장 당시에 보여줬던 일들을 내가 다 알고 있소. 당신은 능히 이 어려운 건국대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내가 갖고 하는 소리요. 건국대에 와서도 그렇게만 해주시면 되오. 아니, 그래 이 늙은이가 첫새벽부터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된단 말이오?” 결국 “이 늙은이가”하는 말에 나는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벌떡 일어나서 진정을 다해 “죄송합니다”하고 절을 올렸다.

“그럼, 제가 지금 61세이니 딱 4년 한 임기만 하면 65세 정년입니다. 그때까지만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 날 아침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이게 하나님의 섭리인가? 바로 그 건국대 때문에 그렇게도 고생하고 끝내는 장관직까지 내려놓았는데 2년 반 만에 바로 그 대학교 총장으로 나를 다시 사용하시겠다니, 아~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저절로 하나님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현승종, 의지와 정밀의 리더십

후일 알고 보니 현승종 이사장께서는 이미 건국대 총동문회장(홍순정)과 나를 청빙하기 위한 굳은 동맹을 체결하였던 것이다. 서울고교 교사 출신인 홍회장은 이 일 때문에 <서울신문>에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을 통해서 철저하게 내 뒷조사를 했노라고 세월이 좀 흐른 후 내게 자백한 바 있다. 그러기에 내 문제가 공식적으로 결정되자마자 워커힐호텔 대연회실에서 ‘총동문회 주최 윤형섭 총장 환영만찬회’를 해주지 않았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후일 알게 되었지만 현 이사장은 사전에 교수협의회와도 모종의 조건부 합의를 맺었다. 모든 일을 그렇게 정밀하게 밀고 나가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취임식장에 입장하면서 주의깊이 살펴보니 입구 양쪽에 많은 인파가 피켓을 들고 도열해 있었다. 나는 의례히 환영 피켓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법인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밀실 총장 물러나라”는 것이 아닌가. 한복으로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 행복한 얼굴로 함께 입장했던 아내의 당황스럽고 무안해하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해를 넘기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학내의 총장후보 양대 산맥의 선두주자 중의 한 분이 의례히 총장이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도 낯선 타교 출신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허탈하고 울분이 터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후 나의 퇴임식은 참으로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행복해 할 만한 내용의 피켓과 현수막 그리고 학생과 교수와 직원들의 석별을 아쉬워하는 기념품들이 내 가슴에 안겨졌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이 늙은이가……!”하는 바람에 내가 순간적으로 굴복해서 비롯됐는데 그때 그 이사장의 연세가 75세였다.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의 그 어른보다 10여세가 많건만 지금 내가 누구에게 “…이 늙은이가…! 했다고 해서 26년 전의 나처럼 벌떡 일어나서 “죄송합니다”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게 바로 현승종 리더십의 위력이라 하겠다. 


여기서, 이사장과 교수협의회 사이에 맺어졌다는 ‘조건부합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야하겠다. 총장 취임 후 1년 반쯤 되던 어느 날 ‘건국대 교수협의회 임원단’(회장 박홍양 교수) 여러 명이 총장실에 들어섰다. 앞에서 말한 조건부 합의의 ‘조건’을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자부한다, 총장 임기제의 제도화

즉, 약속대로 총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여의도광장 유세에서 내걸었던 중간평가 공약을 그의 취임 1년 후 그의 면전에서 헌법위반이라며 공박했던 나다. 나는 그들(교협 임원단)에게 즉석에서, 1초의 주저도 없이 “안 된다. 두 가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첫째는 비록 현 이사장께서 약속하셨다할지라도 이는 내가 약속하지 아니하였음이 분명하니 내가 준수할 의무가 없다. 즉 나의 임기에 관련된 타인의 약속은 법률상 무효이다. 둘째로, 교협이 합의했다는 그 약속내용은 결과적으로 건국대의 정관과 학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게 된다. 법제화 되어 있는 총장임기 4년을 허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입을 모아 “아닙니다. 윤 총장님은 지금당장 중간평가를 해도 75%이상의 지지표가 나올 겁니다”라는 것이다. 나는 다시 열을 뿜었다. “내 문제가 아니라 건국대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난 다음 내 후임자들은 어쩌라는 것이냐. 또 교협은 그러한 전례 있음을 깃발처럼 흔들 것 아니겠느냐. 어느 총장이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건국대를 위해서 희생적으로 봉사하며 장기발전계획을 세우고 소신 있게 추징하겠느냐. 그건 건국대를 침체 내지 퇴행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교협이 내말을 어기고 중간평가를 강행한다면 비록 나에 대한 지지표가 100% 나오더라도 나는 교협임원 전원을 정관파괴, 학칙위반으로 징계처분하고 학교를 떠날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건국대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다행히도 나의 재임 중 다시는 그 문제를 재론하는 일이 없었다. 이미 25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임기제의 제도화를 통해서 건국대 발전에 조금은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 일을 나는 이사장께 보고하지 않았다. 일체 없었던 일로 치부했다. 원래 나는 보고를 매우 심각하게 선별하는 사람이다. 보고라는 것이 언제나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에는 상급자의 최종결심을 구하는 일 외에 ①차후에 발생할 수도 있는 책임소재 논쟁 시에 상급자에게 떠넘기기 위함인 경우 ② 상급자에게 자기생색을 내려하는 경우 ③ 법제도적으로 보고가 의무화되어있는 경우 ④ 상급자와의 심리적·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수단으로 보고라는 형식을 남용하는 경우 ⑤동료 또는 부하들에게 자기와 상급자의 밀착된 거리를 과시함으로써 위세를 부리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나는 위의 다섯 가지 경우를 도처에서 체험한 바 있기 때문에 현승종 이사장께 보고와 그의 사무실 접근은 지극히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이사장이 사전 약속했다는 중간평가에 관련된 보고도 생략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사장의 약속의 이행은 법률상 당사자인 내가 거부한 것이므로 이사장의 의지와 정밀의 리더십과는 무관하다 하겠다. 

 

 

윤형섭 연세대 명예교수·단국대 석좌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연세대 교수를 거쳐 교육부 장관(1990.12.27.~1992.1.22)을 지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서울신문>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건국대·호남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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