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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코가 뇌에게 전하는 말
냄새: 코가 뇌에게 전하는 말
  • 교수신문
  • 승인 2020.11.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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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바워치 지음 | 김홍표 옮김 | 세로 | 484쪽

스마트폰과 후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2011년 미국의 한 광고 회사에서 설문 조사를 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같은 기계 장치와 후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놀랍게도 16~22세 응답자의 반 이상이 후각을 잃는 쪽을 택했다. 이런 결과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조차 ‘감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하고 물으면 후각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p141)

후각에 대한 경시는 그 뿌리가 깊다. 역사 속에서 후각은 철학은 물론 과학에서도 오랫동안 천대받았다. 후각은 동물적 감각이며 주관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아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위대한 철학자 칸트조차 “유기체의 감각 중 가장 천박하면서 없어도 되는 감각”으로 후각을 꼽았을 정도다. 하지만 정말 후각이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냄새-후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중요하다. 코는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모든 것, 즉 위험, 음식, 쾌락 그리고 섹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는 은밀하면서도 분명한 계층의 상징으로 강한 사회적 의미를 드러낸다. 냄새는 또한 저 유명한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향미처럼 기억을 불러오고, 인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냄새가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후각이 오랫동안 편견에 갇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컸다. 냄새와 후각은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데다 후각계의 처리 과정 또한 몹시 복잡해서 과학적인 연구가 더뎠던 것이다. 하지만 1991년 후각 수용체가 발견되면서 후각 연구는 전기를 맞았다. ‘화학감각협회’ 같은 조직이 꾸려져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 연구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냄새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과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화학 등의 과학 분야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인지과학 심리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냄새에 대한 초기 논의부터 최근의 과학적 발견까지 후각을 탐구해 온 역사와 그로 인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들, 그리고 후각과 지각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섭렵하면서 우리를 냄새와 후각의 세계로 능숙하게 안내한다. 후각에 대한 탐구는 그동안 시각 중심으로 이해했던 인간의 보편적인 지각 이론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재미있는 추리소설에는 셜록 같이 매력적인 탐정이 필요한 법. 냄새의 본질을 좇는 탐정, A. S. 바위치는 그 역에 적임자다.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교수인 그녀는 인지 과학자이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한 철학자로 지난 3년 동안 실험실에서 후각을 연구했다. 박사 학위 논문 제목 또한「냄새 감각의 형성」이며, 이 논문의 심사위원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석 박사가 그녀의 멘토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 덕분에 바위치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실험 과학의 성과를 성찰하고 통합할 수 있었다.

바위치는 매력적인 탐정의 필수 요소인 독특한 개성과 스토리도 갖췄다. “어릴 적 어머니는 동화책 대신 괴테를 읽어 주셨”고, 그렇게 자란 그녀는 “해마다 새로운 양치식물을 키우는” “실험실의 이상한 철학자”가 되어 “실험실에서, 구내식당에서, 때론 여행길 기차 안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몇 시간이고 후각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책을 읽다 보면 후각 연구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후각을 향한 러브레터’라는 레슬리 보스홀 교수의 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에는 신경과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생물물리학자, 동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는 물론 조향사와 와인 제조가에 이르기까지, 바위치가 함께 연구하고 인터뷰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냄새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생생히 담겨 있다. 바위치가 탐정이라면 이들은 왓슨이나 허드슨 부인을 능가하는 동료이자 조력자, 목격자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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