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2:05 (금)
절대군주를 위한 궤변
절대군주를 위한 궤변
  • 교수신문
  • 승인 2020.11.23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단비 지음 | 도서출판 수류화개 | 378쪽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우수한 출판콘텐츠 발굴 및 출판 내수 진작을 위해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절대군주를 위한 궤변』은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출간한 도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명가의 사상가인 공손룡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합의된 바 없이 극과 극의 해석이 존재해왔다. 이 책에서는 명가를 진의를 가린 채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는 학파로 해석하여 “백마비마(白馬非馬)”, 곧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궤변으로 유명한 공손룡 역시 실질적인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공손룡은 말, 흼, 돌, 단단함 등 다양한 사물과 성질이 서로 어떻게 결합하며 변화하는지 이야기한다. 그가 예로 든 여러 관계에 있어서 ‘변화’는 특정 성질에 한정되는 것(말 일반 중 흰 말), 외부 요소와 섞여서 변질되는 것(푸른색과 흰색의 결합),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것(인지 능력과 외부사물의 접촉)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공손룡은 이러한 변화를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는 곧 군주에 대한 비유인데, 주변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 절대군주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공손룡뿐 아니라 춘추전국시대 학자는 모두 외부사물에 의한 인간 내면의 변화에 대해 토론했다. 그 중 순자와 후기묵가는 공손룡과 유사한 예를 들어가며 논의를 전개하지만, 공손룡과는 달리 인간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인격수양을 추구한다. 반대로 노자는 제도나 법규 등 외부 자극에서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추구했으며 한비자는 신하들의 영향을 받거나 특정 성질에 한정되지 않는 절대 군주에 대한 이론을 세우며 노자의 후계자임을 자청했다. 특정 성질에 한정되거나 외부 자극에 지배받는 것은 모두 공손룡이 말하는 ‘변화’에 해당한다. 공손룡은 도가의 영향 하에, 통치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나 정통성보다는 권력의 독점이 더욱 중요하다는 처세술을 주장한 사상가다.

공손룡에 대한 기존 연구는 서구식 보편자론과의 비교에 얽매어있다. 이 책은 제자백가의 사상은 동시대 다른 제자백가와의 비교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공손룡자』에서도 본성론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정치론을 발견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노자, 한비자 등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고 고대중국의 사상적 흐름 내에서 공손룡이 차지한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정치론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공손룡은 당시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군주의 권력 독점을 주장한 것이다. 곧 공손룡의 이론은 혼란을 수습할 대안이자 절대군주를 위한 위험한 궤변이라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