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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끌어내야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끌어내야
  • 조흥식 서울대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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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4-빈곤퇴치와 빈부격차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의 불평등은 불가피한 문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 역시 첨예해진다. 따라서 논의는 빈부격차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최소화 할 수 있는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기초작업으로서, 우리나라의 빈곤연구의 한계는 무엇인지, 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서 빈곤문제를 어떻게 조명해야 할지 의견을 모았다.
 

● 한국사회의 빈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

빈곤문제는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이 관심을 갖는 사회문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의 절대적 빈곤 시기를 지나면서 소위 사회과학의 시대라는 1980년대에 빈곤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적어도 최근 외환위기 때까지는 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다 IMF 관리체제 이후 실업의 증대, 노숙자의 급증, 심화되는 빈부격차 현상 등이 목격되면서 국가정책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전면 개정해 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을 성취하려 했으나, 신용카드 남발, 부동산 가격 폭등 등 경제정책의 오류를 야기시킴으로써 그 여파는 빈곤층의 확산에 기여했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빈곤율이 떨어지지 않고,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으며, 빈곤층의 자살 등 사회문제까지 발생함으로써 빈곤퇴치와 빈부격차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접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장기 실업자의 증가, 여성의 낮은 취업률 추세,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등 빈곤선에 못 미치는 노동가구의 증대와 가족해체, 결식아동의 증가 현상 등은 전통적인 빈곤과 또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신빈곤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사회에서 빈곤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며,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학계의 무관심부터 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빈곤과 불평등 대책 마련은커녕 국민소득 1인당 2만불 시대라는 장밋빛 구호와 함께 다시금 성장 논리가 분배 논리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서구의 선진 국가들은 국민소득 1인당 1만불이 되기 이전인 20세기 전반기에 빈곤에 대한 국가책임의 당위성을 인지하고, 인류사회에서 극복하지 못했던 빈곤자에 대한 야만성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은 근대 시민사회 이념의 현실적 실현을 목적으로 한 것인데, 현재 한국사회는 이러한 근대성의 확립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성장 중심의 경제지상주의가 빈민이나 장애인, 결식아동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인권이 아닌 자선과 동정으로만 대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빈곤에 대한 학계 연구의 문제를 타파해야 한다. 빈곤을 일부 계층에만 한정된 문제로 간주하거나, 빈곤문제를 단순한 소득문제에만 국한시킴으로써 빈곤의 동학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든가, 아니면 빈곤을 연구할 수 있는 통계자료의 부족을 핑계로 들어 아예 빈곤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학계의 무관심을 깨뜨리는 일이다. 이번 17대 국회선거에서 계급 이념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은 빈곤문제와 그 해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학계의 연구에도 지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는, 빈곤퇴치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접근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빈곤문제 해소에 대한 전통적인 방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국민최저선 보장 중심의 사회복지제도 확충과 조세정책, 이에 보완하는 정도의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강력한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 중심의 빈곤해소 정책은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힘입어 상당한 결실을 맺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한 경제활동인구의 정체 내지 감소, 편부모가구와 미혼모가구 등 상대적으로 빈곤에 빠질 위험이 높은 인구집단의 증가 등의 변화는 빈곤과 빈부격차 등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복지의 수요 증가와 함께 국가 재정위기를 초래했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 즉 제조업의 퇴조와 함께 세계화에 따른 자본과 금융우위의 구조 변화는 시간제와 임시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와 유연성의 강화를 특징으로 하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는 노동하는 가난한 자를 양산해 내는 신빈곤문제를 자아냈다.

이런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경제적 불안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신빈곤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직면해 유럽은 빈곤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서 ‘사회배제’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의 빈곤정책이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 결핍현상을 중시해 이전지출 위주의 소득보장정책을 추구했다면, 사회배제정책은 단순한 경제적, 재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또한 빈곤의 현상적 측면 외에도 빈곤의 원인과 과정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낙후된 사회복지정책이 가져온 비근대적이며 반인권적인 차별 현상, 빈부격차라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서의 소득분배정책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요소, 그리고 분배와 경제성장이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견인적이라는 신념 등을 바탕으로 하는 복지의 사회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빈곤선을 넘나드는 인구의 규모가 확대되고 그 속도 또한 매우 역동적으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현상들은 이제 빈곤의 동태적 문제를 반드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할 중요한 연구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값싼 일자리 창출정책, 또 다른 빈곤문제 불러

사실상 지금까지 우리 학계에서 이루어진 빈곤연구는 빈곤의 본질적 차원이 아닌 현상적 차원에 머물렀다. 즉 빈곤의 규모와 산정 방식, 그리고 산정에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뤘다. 앞으로는 빈곤의 원인, 한국사회의 특수한 빈곤 재생산의 조건과 양상, 빈곤으로 유입되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양태, 빈곤정책에 대한 관점, 빈곤에 대한 국가 및 민간의 대책 및 개입 프로그램, 빈곤 극복을 위한 포괄적 정책으로서 사회배제정책의 필요성 여부 등 빈곤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다층적 공공부조 체계의 도입을 통한 사회안전망의 확고한 기반 없이 이뤘지고 있는 작금의 값싼 일자리 창출정책은 또 다른 빈곤문제를 야기 시킴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사회복지 서비스/사회복지실천이론에 관심이 많다. 공저서로는 ‘한국의 가족복지학’(학지사 刊) ‘산업복지론’(나남출판 刊)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복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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