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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눈으로 이미지를 읽다
자기 눈으로 이미지를 읽다
  • 강수미 홍익대
  • 승인 2004.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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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이미지 비평』| 이영준 지음| 눈빛 刊| 2004| 308쪽

▲ © yes24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모든 글 가운데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하며, 피가 정신인 글을 쓰라 했고, 벤야민은 “사고의 실현”으로서의 글쓰기를 말했다. 이영준의 ‘이미지비평: 깻잎 머리에서 인공위성까지’는 피로 쓰는 글쓰기의 진정성을 오히려 시각적 경험의 진정성으로 실현하는 우리 시대 글쓰기의 이행을 보여주고 있다.

비평의 대상이, 말투가, 태도가 그래서 총체적으로는 ‘비평’이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짧은 눈으로 보면 기존 비평에 대한 반성 혹은 극복에서 나온 것이지만, 넓게 생각해 보면 문화가 달라졌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경험과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기존 비평은 한편으로 이영준이 책의 본문 중 탑골공원과 그것을 보호하는 유리구조물을 논하면서 “탑을 보호하려고 세운 그 구조물이 탑은 가리고 스스로만을 거만하게 내세운” 것처럼 차폐장치가 돼 비평대상을 가리고 독주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즉 비평대상(작품 혹은 이미지)에 솔직하지 않은 비평, 대상을 억누르는 너무도 현학적인 비평이 작품 앞에서 디스플레이 되고 있었다.

저자는 “자기 눈은 자기 것”이라는 당연함에서 출발한다. ‘이미지비평’은 바로 그런 인식의 시점에서 도시의 이미지를, 미술 현장의 이미지를, 부박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제도라는 그물망의 이미지를 ‘보고’있다. 한국 도처에 눈에 띄는 ‘가든’에서 우주 상공에 떠서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인공위성까지, “치밀하게 엉성한” 최정화의 시각예술에서 대중에게 “어려운” 광주비엔날레 사진의 다큐멘터리 수사(rhetoric)까지, 깻잎형 여고생 머리에서 “되게 건방진 아파트”까지, 북한산을 쇠락시키는 도시계획에서 비평이라는 사고체계까지. 저자는 이 잡다한 이미지들을 어떤 때는 “흘낏” 보고, 어떤 현상은 이론으로 정색해서 풀어 보고, 어떤 미술은 애정으로 뒤얽혀 보며, 어떤 제도와는 인터뷰로 맞장 떠서 보는 것이다.

이영준의 ‘이미지비평’은 일상의 이미지 스펙터클에 묻혀 사는 평범한 독자로서든, 동종 업에 종사하며 ‘눈의 심지’를 갈고 닦는 비평가로서든 재미있게, 유효하게 읽힌다. 아니 ‘이미지로 씌어진 텍스트’로 읽히면서 ‘텍스트로 씌어진 이미지’로 보일 것이다. 이영준의 비평 방식은 인텔광고를 “인헬 펜티엄 프롸세서 투”로 듣는 그의 사적 경험과 문화,이미지 비평 이론과 직접 찍은 사진이미지가 “짬뽕”돼 흥미롭게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이영준만의 리터러시(literacy)는 아니다. 그것은 문서화된 이론의 한계 상황에서 탈출한 우리시대 보기,독해,저작 메커니즘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이제 비평의 문제는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무의지적 경험으로 교란하고, 독특하게 맥락화(articulation)하느냐에 있어 보인다.

강수미 / 홍익대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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