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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획: 지식인들의 정신질환 ‘우울증’
생활기획: 지식인들의 정신질환 ‘우울증’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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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의식의 그림자…초기에 간단하게 치료가능

요즘 ‘우울증’을 호소하는 교수들이 부쩍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교수들 개인의 자아특성과 대학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우울증을 유발,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구체적인 우울증의 증세와 대처방안 등을 살펴봤다. 또한 손쉽게 자신의 우울증을 테스트 해볼 수 있도록 우울증 자가진단 프로그램을 실었다. 나아가 우울증 극복방안 십계명도 짚어봤다.   

최근 인제대 서울 백병원에 ㅇ 교수가 찾아왔다. ㅇ 교수는 “요즘 자꾸만 술을 찾게 된다. 계절이 바뀌면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라며 호소했다. 또 다른 ㅂ 교수는 신체적인 이상증세들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ㅂ 교수는 “식욕이 떨어지고, 잠을 잘 이룰 수 없다. 집중력도 전과 같지 않아서 연구 활동에 지장이 있다”라며 어려움을 얘기한다. 모 대학 심리학과 교수에게도 ㅊ교수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찾아왔다. ㅊ 교수는 “학과가 매우 폐쇄적이다. 교수들끼리의 인기도 및 연구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다”라며 걱정을 털어놨다.  

요즘 라일락이 화창한 봄날의 캠퍼스지만, 교수들 중 우울증세를 나타내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신체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인의 상당수가 우울증으로 파악된다. 아카데미가 예전과 달리 더욱 경쟁적인 체제가 되면서 교수들이 처한 상황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임용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물론이고, 계약제 전환 이후 재임용에서의 불안함, 연구실적과 강의평가에서 오는 중압감 등은 교수직이 더 이상 ‘마음 편한’ 직업이 아님을 말해준다. 대학경영이나 학생취업, 신입생확보까지 떠맡겨지면 거의 ‘정신적인 막노동’ 상황에 빠진다.

얼마 전 우종민 인제대 교수(신경정신과) 팀은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며, 11%는 우울증세 등을 앓고 있다”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근래 우리사회에 스트레스 증가나 자살 증가 등이 이어지는데, 교수라 해서 예외일 순 없는 듯하다.

우울증의 정의와 증세

우울증은 “자기 상황을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슬픔, 괴로움, 절망감 등 정상보다 처지는 감정으로,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 정서적인 변화뿐 아니라 사고(생각)와 행동 그리고 생리적인 변화까지 불러오기 일쑤다.  

주요 증상은 △슬프고 우울하며, 쉽게 피곤하다. △일상생활의 즐거움이나 흥미 감소. △말이 줄고 행동도 단조로워짐. △타인으로부터의 거절이나 비난을 받을까봐 걱정됨. △식욕부진 및 체중 감소, 소화장애, 변비, 설사, 두통, 뒷목 뻣뻣함, 팔다리 저림, 전신 피로감, 근육통, 관절통, 가슴 답답함 등을 나타냄. △잠이 쉽게 오지 않거나 새벽에 일찍 깸. △무기력이나 분노를 느낌 등이다.  

지식인들의 강한 에고가 우울증 불러

전문가들은 교수사회의 우울증이 일반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우종민 교수는 “지식인 계층은 자존심이 세 우울증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지식인들의 강한 에고가 증세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채규만 성신여대 교수(임상심리학)는 교수들의 우울증 원인이 교수사회의 특수한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연구 압박감에서 온다. 또한 진급, 재직권도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라고 분석한다. 이은진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연구와 강의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교수가 되고 보니 대학경영, 취업, 신입생확보 등 부가적인 일들이 산더미처럼 다가와 미처 대처를 못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고립된 채 연구하므로 다른 교수들과의 의사소통이나 협조, 공동활동이 거의 없다”라며 조직 특성상 네트워크의 취약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우울증은 특히 두통이나 위장장애와 같이 신체증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들은 이를 ‘가면성(Masked)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우울증은 연구활동에 치명적일 수 있다. 불면증을 유발하고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뇌세포를 손상시키는데 이런 신체이상은 스트레스를 더 강화시켜 우울증을 악순환시킨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심각한 상태로 진화한다. 즉, ‘공격성’을 띌 수도 있다. 이게 타인을 향하면 타살, 자신을 향하면 자살이 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60~70%는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이중 10~15%는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는 정상인 자살기도자의 40배가 넘는 수치”임이 드러났다.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우울증인 것이다.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배기영 동교신경정신과 원장은 “우울증 환자의 80~90%는 경증으로 신속히 치료를 받는 게 관건이다. 간단한 약물로도 금방 호전된다”라며 조기 치료를 권장한다. 

우울증 환자의 40~50%는 체내 신경전달물질의 생성 및 공급체계에서 이상이 온 것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여기엔 우울제, 기분안정제, 항불안제, 항정신병 약물 등이 사용되는데, 이들은 뇌하수체가 통제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세로토닌, 토파민 등의 물질을 보충한다. 항우울제는 복용후 3~4주가 지나야 뇌 신경전달물질이 정상화된다. 

하지만 우울증이 몸의 병이라고만 할 순 없다. 채규만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자기 경험에서 오는 좌절감에서 비롯됨을 간과해선 안된다. 자기 자신, 타인,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여나가야 한다”라며 정신과 치료 병행을 주문한다. 이는 2차적 장애방지, 심리적 스트레스 해결, 의사소통능력 향상, 긴장감소, 대인관계 향상, 사회적응을 위한 것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공동연구가 잘 이뤄지는 학문공동체와 교수들의 개인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우울증은 증세의 심각성에 비해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매우 낮다. 학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 중 20% 정도만 치료를 받는 걸로 나와 있다. 우울증세와 그 치료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는 △‘뇌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이고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항우울제는 뇌를 상하게 한다. △항우울제는 중독성이며 의존성이 있는 약물이다. △증상이 개선되면 곧바로 약을 멈춰도 된다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회적 편견이나 개인적 무지가 우울증 치료의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스럽게 마음과 몸의 무거움을 덜면서, 긍정적 사고를 통해 삶과 대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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