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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왜 시인을 추방하자고 했을까
플라톤은 왜 시인을 추방하자고 했을까
  • 박강수
  • 승인 2020.11.1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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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 강대진 외 7명 지음 | 아카넷 | 260쪽

플라톤 읽는 ‘8+1’가지 방법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생각일까

전체주의보다 공동체주의에 무게

 

플라톤의 위엄을 서술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2부 1장 세 번째 단락에 있다.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확실하게 일반적으로 특정 짓는다면 그것은, 그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철학자들이 다루는 개념과 관념을 정돈해 계보도를 만들면 플라톤이라는 기착지를 빠짐없이 지난다는 말이다. ‘플라톤을 읽어야겠구나’ 생각이 절로 드는 문장이다.

기자가 처음 읽은 플라톤 ‘대화편’은 『심포시온』이었다. 그때 했던 생각은 둘이다. 첫째, ‘대화편’은 정말로 대화로 쓰여 있구나. 둘째, 플라톤 책에는 플라톤이 나오지 않는구나. 플라톤은 모든 저작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주인공을 앞세운 희곡 형식으로 사상을 풀어냈다. 이를테면 『크리톤』은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메논』은 메논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구성된다. 이 독특한 저술 방식에 대해서는 소싯적 비극작가 지망생이었던 플라톤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철학으로 진로를 변경한 아픈 기억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정암학당의 플라톤 큐레이팅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또 다른 여덟 개의 각주로 이루어진 교양 해설서다. 희랍 문헌 연구자 여덟 명의 「정암학당 고전특강」 강의 원고를 가공해 엮었다. 정암학당은 고대 그리스 작품 강독과 번역을 20년 넘게 이어온 학술단체다. 책의 첫 번째 미덕은 너른 출입구다. ‘대화편은 대화 형식으로 쓰였구나’를 막 깨친 입문자부터 ‘민주정을 혐오한 플라톤은 전체주의자인가’,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은 고대그리스판 블랙리스트인가’ 등 주제에 혹하는 ‘플라톤 덕후’가 함께 접속해 즐길 수 있다. 사전 지식의 정도와 상관없이 여덟 편의 강의를 수료하고 나면 자신과 사적으로 교우하는 아홉 번째 플라톤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미덕은 고대 그리스 탐사다. 이 책의 몇몇 챕터는 플라톤보다 플라톤이라는 정신을 있게 한 그리스 문화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가령 강성훈 교수가 정리한 1장은 고대 그리스의 종교에 당대 도덕관이 어떤 식으로 반영됐는지를 다뤘다. 지중해 연안에서 발원한 유대-기독 계열 종교가 도덕을 유일신(유일한 도덕가치)과 인간 사이 계약·의무로 규정한 데 반해, 그리스 종교에서는 다양한 신(다양한 도덕가치) 간 충돌 속에서 일종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 인간이 제시된다. 이러나 저러나 신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그리스 비극의 세계관이다. 제우스 말을 듣다 보니 아르테미스 성질을 긁고 마는 아가멤논의 트로이 출정군이 대표적이다.

 

시인 지망생과 정치 유망주 사이에서

마지막 세 번째는 날카롭고 다채로운 논점이다. ‘플라토닉 러브’의 실상부터 우주론까지 플라톤 세계관의 테마파크라고 해도 좋을 구성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역시 ‘시인추방론’을 다룬 3장(강대진 교수)과 ‘민주정 비판’을 다룬 6장(이기백 교수)이다. 둘 모두 『국가』를 뿌리 텍스트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두 논의는 정합적으로 읽힌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해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플라톤 주장의 근거는 『국가』 10권에 있다. 플라톤이 보기에 현실은 ‘이데아’에 대한 모방인데, 예술과 문학은 이데아를 본뜬 현실을 다시 모방한 것이다. 즉, 진리로부터 두 걸음이나 뒤쳐진 “짝퉁의 짝퉁”은 세상을 혼탁하게 할 뿐이라는 비판이다.

시인추방의 명분은 하나 더 있다. 『국가』 2권과 3권에서 플라톤은 서사시가 신과 영웅을 비열하고 못난 존재로 그리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 시민들에게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서사시가 저급한 정치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강대진 교수는 서사시 이후에 유행한 그리스 비극 역시 플라톤의 미움을 샀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비극 장르는 아테네에 민주정이 정착되면서 함께 발달했고, 토론을 강조하고 남성지배를 찬양하는 등 ‘아테네식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선전물로 제작되었다. 반(反) 민주주의자 플라톤은 그리스 비극에 정치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정 프로파간다에 동조하는 비극 작가들도 추방돼야 한다.

 

서양 고전 읽기 워밍업

다만 이기백 교수는 6장에서 이런 설명을 보탠다. “플라톤의 정치관에 전체주의적 색채가 묻어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가 그린 이상 국가의 면면을 따져보면 기실 전체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에 가깝다.” 히틀러보다는 마이클 샌델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관은 다소 공허하고 현실정치와 너무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완고한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한때 실제 정치가를 꿈꾸었고 30인 참주정 시대에 정치 참여를 권유 받기도 했으나, 이후 나타난 폭정과 민주정 시기 참사(소크라테스 재판)를 목도하면서 환멸을 갖게 된 탓이라는 해석이 그럴싸하다.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의 인물이다. 그의 그림자 너머로 약 2400년어치 각주가 달려야만 했던 이유는 플라톤을 이해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당장 ‘대화편’의 생각들이 어디까지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플라톤의 것인지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거장의 면모는 오해의 규모를 통해 입증되는 걸까. 플라톤을 둘러싼 잡다한 곡해와 거대한 논쟁을 쫓는 일은 고스란히 서양 철학사의 ‘본문’을 읽는 일이 된다. 완역까지 5권을 앞둔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 프로젝트를 기다리며 워밍업 하기 좋은 책이 나왔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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