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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상황 반영한 개념틀이 필요하다
한국적 상황 반영한 개념틀이 필요하다
  • 박상필 성공회대
  • 승인 200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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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신경향: 시민사회 연구의 새로운 흐름

박상필/ 성공회대· 행정학  

근대 이후 엄청난 발전을 해 온 자본주의와 20세기에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한 정부를 생각하면, 많은 일상적인 삶의 주제와 다양한 사회문제가 시장과 국가에 의해 논의되고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시민사회에 대한 재발견과 시민사회론의 부상은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핵심용어로 등장한 거버넌스와 사회자본은 말할 것도 없고 생태주의, 페미니즘, 공동체사회, 자원봉사, 민주시민교육, 사회경제, 열린사회, 능동사회 등은 모두 시민사회론에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적 담론도 시민사회론의 영역에 있다. 이런 주제의 확산은 현대사회의 각종 사회문제가 관료조직과 시장원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이 다양한 탈물질적 욕구와 연결되어 있고, 좌우파의 이분법을 넘는 다층적 갈등전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증주의 주류화에 반대한다

시민사회론은 저 멀리 로마철학자인 키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혁명가였던 그람시에 의해 제기됐다. 이후 오랫동안 침잠했다가 20세기 후반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 배경에는 1970년대 서구사회에서 복지국가 위기로 인한 제3의길 모색과 신사회운동의 발달, 1980년대 남미와 아시아에서의 권위주의정권의 해체와 민주화의 이행, 그리고 1990년대 동구유럽에서 공산주의의 멸망과 시장경제의 도입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시민사회론의 등장에는 볼테르, 퍼거슨, 헤겔, 마르크스, 아담 스미스, 토크빌, 그람시 등이 기여했고, 최근에는 하버마스, 기든스, 알랭투렌, 킨과 헬드, 코헨과 아라토 등이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시민사회론의 등장은 사회과학의 방법론적 전환과 다각화라는 점에서 학문적 발전에도 중요하다. 우선, 시민사회론은 사회적 행위의 맥락과 윤리적 함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실증주의 주류화에 반대한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현세대와 미래세대간의 평등과 공존은 근대의 표준적 방법론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민사회론은 방법론적 어푸로치에 있어서 학제적 · 다학문적 연구, 변화와 성찰성의 강조, 다문화적 세계관(여성주의와 비서구사회의 인식), 자연과의 공존, 상호주관성, 역사성의 복원 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이 소개된 이후, 1987년 6월항쟁과 함께 각종 시민단체가 분출해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 분야가 연구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는 국가의 재구조화와 민주화, 시장주의 원리의 폐해, 지구화와 초국적자본의 방어, 도시화에 따른 공동체사회의 파괴, 후산업사회의 다양성과 복합성 등은 모두 시민사회론의 길목을 비켜갈 수 없다. 한국사회학회와 한국정치학회가 1992년에 공동세미나를 통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후, 김세균과 강문구, 김성국과 손호철간에 시민사회에 대한 지적 논쟁이 있었고, 유팔무 · 김호기 · 김정훈은 그 동안의 연구를 정리한 단행본을 출판했다.

한국에서 기존의 연구는 조희연이나 최장집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주로 시민사회를 민주화와 시민운동과 연계해 진행됐다. 이것은 군부권위주의로부터의 이탈과 다양한 시민적 참여욕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박재영, 박흥순, 조효제 등에 의해 글로벌 시민사회론이 연구되면서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시민사회를 제3섹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구도 나타나고 있다. 시민사회를 제3섹터에서 접근하는 것은 복지다원주의에서 공공서비스의 공동생산을 통해 복지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샐러먼이 ‘제3자정부’라는 대안메커니즘을 제시한 적이 있고,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공생산모델이 제시됐다. 박상필과 주성수와 같은 행정학자에 의해 이 분야가 연구되고 있다. 특히,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공익을 추구하는 NGO가 역동적인 활동을 전개함에 따라 한국NGO학회와 한국비영리학회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자원성과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외에도 시민사회론은 기업과의 파트너십, 지방자치, 자원봉사활동, 대안문명 등과 연계돼 연구되고 있다.

현실적 변용와 창안 연구 부족해

최근에는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에서 동아시아 시민사회를 비교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에서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지표개발과 측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적 연대는 서구의 주류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양식을 모색한다는 의도를 넘어, 동양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와 지구화에 대한 공동대응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비교연구와 연대는 방법론적으로 중범위이론의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연구에서는 시민사회가 실질적 민주주의, 갈등조정, 복지사회 구축, 지방정체성, 남북통일 등과 어떻게 연계되고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 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 시민사회론은 유럽모델을 소개하고 적용하면서 한국적 변용과 창안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중앙중심의 규범적 연구지향으로 인해 지방의 실정을 포착하는 경험적 연구가 부족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론은 비록 투박할지라도, 한국역사에 기초해 한국적 상황을 반영하는 개념틀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역사성을 가질 때, 시민사회론이 한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실성을 가질 수 있고,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경북대에서 '시민단체의 자주성과 공익활동능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NGO를 통한 대안사회의 구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서로는 ‘NGO와 현대사회’, ‘NGO와 정부 그리고 정책’(아르케 刊), ‘NGO를 배운다는 것’(역사넷 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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