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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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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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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지음 | 조만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40쪽

문학과지성사의 인문 에세이 시리즈 ‘채석장’의 다섯 번째 책으로, 프랑스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가 ‘무대’라는 개념을 주제로 나눈 대화 10편을 묶은 책 『무대』가 출간됐다.

두 철학자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재직하던 시절에 만나 평생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가 됐으며, 이후 40여 년에 걸쳐 『문학적 절대』 『문자라는 증서』 등 다수의 공저를 발표하고 수 차례의 공동 강의를 개최하는 등 많은 작업을 함께 수행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주제는 바로 무대라는 연극 개념이다. 왜 연극일까? 낭시는 “오늘날 철학적 작업 속에서 무대에 관한 문제가 여러 주제들의 매듭 혹은 교차점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낭시는 또한 연극이 “현전을 현시하는 특권적인 방식”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배역과 배우, 텍스트와 공연, 말과 몸처럼 이중성을 지닌 연극의 특성과 관련된다. 더불어 이는 이데아와 현상, 현전과 재현, 진리와 현시, 존재와 현존재 등 철학적 개념쌍들을 연극과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개념은 재현, 미메시스의 문제와 닿아 있다.

책에 실린 대화는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1992년 주고받은 다섯 개의 편지로 『신정신분석지』에 게재되었던 것이고, 두 번째 대화는 12년 후인 2004년 열린 학술대회에서 앞의 서신에 덧붙이는 추신 형태로 기획된 다섯 꼭지의 대화이다. 낭시가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 대화의 목표는 “언제나 두 대화 상대자 사이에서 새롭게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며 이 책 말미에서도 못다 한 토론은 다음 기회에 이어가기로 기약했으나 2007년 라쿠-라바르트의 죽음으로 인해 대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대화’라는 고전적인 연극 형식에 기대어 질문과 답변, 동의와 수긍,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는 첨예한 논쟁을 펼친다. 두 철학자는 이전에도 적지 않은 공동 작업을 수행해왔지만 『무대』는 논쟁을 통해 이들 간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저작이다. 예컨대 연극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논의를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쟁점이 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6요소 중 하나로 꼽은 옵시스 개념이다. 낭시는 흔히 스펙타클이라 번역되는 ‘옵시스’를 문자 그대로 ‘무대에 놓기’라는 의미에서 무대화(미장센)로 명명한다. 하지만 라쿠-라바르트에게 옵시스는 단지 시각적인 요소, 스펙타클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한 옵시스 혹은 무대의 문제는 곧 ‘형상’이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낭시는 최소한의 형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라쿠-라바르트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낭시에게 연극에서의 스펙타클은 용인되는 것이지만, 라쿠-라바르트에게는 결단코 불필요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무대와 극 텍스트, 예술 장르는 물론 재현, 현시, 현전 등에 관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의 사유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추상적 개념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잇따르고 이들이 다루는 레퍼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말라르메까지 방대하여, 짧은 분량임에도 읽기에 녹록지만은 않다. 하지만 옮긴이의 정연한 해설과 함께 읽다 보면, ‘대화’라는 연극의 형식으로 연극을 사유하는 두 철학자의 논지에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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