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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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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섭 지음 | 나무발전소 | 240쪽

인생에 찾아온 병은 언제나 불청객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암은 예고가 없을뿐더러 치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중병이다. 사실, 병중에서도 암은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경험이라 암을 얻은 당사자의 언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병과 싸우느라 말할 여유가 없거니와 다행히 치료를 마쳤다 하더라도 치료받는 받는 동안 쏟아 부은 기력을 회복하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자신의 병을 알릴 여지는 더더욱 없다. 김은섭은 암환자가 된 날 밤, ‘내가 얼마 동안 어떻게 살든 현재 상황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매일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했다.

항암 치료 중에 자신의 병에 관해 기록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에세이스트 허지웅은 최근 펴낸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혈액암 치료 부작용으로 물건을 짚을 수도 없을 정도로 온 몸이 부어 올랐고, 천장이 내려올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밤마다 덜 아프게 해 달라고 아무에게나 기도하며 버텼다고 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36세의 신경외과 의사인 폴 칼라니티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 2년을 담고 있다. 그는 ‘화학요법 때문에 손가락 끝이 갈라져서 아플 때에도 솔기가 없고 가장자리가 은색으로 된 장갑을 끼고’ 책을 썼다. 컴퓨터공학 교수로 있던 랜디 포시는 치료가 가장 어렵다는 췌장암에 걸려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아이들과 제자들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강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인 『마지막 강의』를 남겼다. 『아픈 몸을 살다』에서는 젊고 건강했던 아서 프랭크 교수가 심장마비를 겪고 그 다음해에 고환암 진단을 받으며 질병으로 얻을 수 있었던 이해를 드러낸다.

저자 또한 대장암 발병 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5단계의 감정을 거치며 얻은 간절했던 말을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에 꾹꾹 눌러 담았다. 질병이 가져오는 상실과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그저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어려움을 용감하게 극복해낸 서사의 영웅 이야기도 아니다. 암이라는 병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란 점을 저자는 하루하루 충실한 생활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있다. 행운이 있든 없는 아픈 정도가 심하든 덜하든 내 인생에 찾아온 암투병도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이고 당신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라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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