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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임진전쟁. 1∙2
명나라의 임진전쟁. 1∙2
  • 박강수
  • 승인 2020.11.18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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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응창 외 8명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1030쪽

『쇄미록』 발간 직후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과 관련, 상대적으로 국역이 되어 있지 않은 중국 명나라와 일본의 자료들을 검토하였고, 이 과정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명군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과 형개의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에 주목했다.

이에 국립진주박물관은 2019년부터 올해 말까지 2년 계획으로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국역사업을 진행하면서, 올해 역주서 두 권을 먼저 선보이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역주서 1, 2권에 이어 역주서 3, 4권인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와 『명나라의 임진전쟁: 전후 처리』, 그리고 원문의 교감·표점본은 2021년에 발간함으로써 전 5권으로 구성된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 국역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형개의 『경략어왜주의』가 국역이 완료되면 그동안 접근이 쉽지 않았던 중국의 귀중한 자료들이 임진왜란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1595년(선조 28) 전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초기 명나라 군대의 속사정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경략복국요편’이란 경략으로 임명된 송응창 본인이 조선의 영토를 회복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문서를 엮은 책이라는 의미다. 중국(명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략의 직책을 부여 받은 송응창을 필두로 고양겸(顧養謙)과 손광(孫鑛), 형개 등 모두 4명의 경략이 임진왜란·정유재란 시기 임명됐다.

송응창은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1593년 연말까지 명군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에 명군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전선에서 빗발치는 병력과 물자 지원 요청, 그러나 북경의 미적지근한 반응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4만여 명군은 물론 조선의 운명,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향배를 몸소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는 북경의 황제와 고관들에게, 후방인 요동(遼東)과 산동(山東)의 지방관들에게, 전선의 사령관 이여송 및 그의 부하들에게, 그리고 조선의 국왕과 관료들에게 하루에 많게는 10여 통의 공문서와 사적인 편지를 보내 전쟁 수행의 모든 과정을 조율하였다. 본국에서 병력과 물자를 최대한 끌어당기고, 전장의 장병들에게 죽음을 무릅쓰라고 독려하며, 조선 측을 어르고 달래가며 협력을 끌어내는 일 모두가 그의 붓끝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가 쓴 문서를 모아놓은 이 책에는 송응창 한 사람뿐만 아니라 명나라가 짊어져야 했던 임진왜란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경략복국요편』의 국역사업은 중국 근세사 및 조선시대 전공자이자 명·청 및 조선의 외교문서 전문가들이 모인 한중관계 사료연구팀(책임연구원 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이 맡아서 진행하였다. 이 팀은 국내에서 『경략복국요편』국역사업의 최고 적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구범진(서울대)·김창수(충북대)·박민수(이화여대)·정동훈(서울교육대)·이재경(서울대) 선생님은 문서를 매끄럽게 번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김슬기(서울대 박사과정)·서은혜(서울대 박사과정)·薛戈(서울대 박사과정) 선생님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주석을 꼼꼼히 달아주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명나라까지 국력을 기울여 맞붙은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그 동안 임진전쟁에 대한 연구는 한국과 일본 사료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전쟁의 중요한 한 축을 맡았던 명 측의 역할과 그 영향은 충분히 살펴볼 수 없었다. 이번에 『명나라의 임진전쟁』을 간행함으로써 이제 이 전쟁이 띠고 있던 국제전쟁으로서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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