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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권력과 문화
상징권력과 문화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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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지음 | 컬처룩 | 408쪽

부르디외는 누구보다도 이론의 사회성과 역사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지닌 지식인이었다. 그는 ‘(그) 이론을 말하는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끊임없이 질문했고, 이러한 위치성의 반성적 인식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지식을 구축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부르디외의 문화예술론은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역사적 사건과 정황 속에서 논쟁과 교환을 거치며 전체적인 형상을 갖춰 나갔다. 이를 구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는 일은 그 이론의 강점뿐만 아니라, 논리적 궁지와 난점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부르디외의 이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문화연구자 이상길 교수의 저서 『상징권력과 문화: 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은 부르디외의 문화예술 이론과 비평에 대해 밀도 있게 다룬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부르디외가 사회학적 관점에서 예술과 미디어 문화라는 두 영역에 대해 어떠한 분석과 입장을 구축했는지 상세히 살핀다. 부르디외는 장이론을 기반으로 전체 문화생산 구조와 작동 논리에 대한 체계적인 파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상징자본의 축적이 제1원리로 작용하는 예술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동료 생산자 중심의) 소비자 시장을 가지는 반면, 저널리즘을 위시한 미디어 문화는 경제자본의 축적을 지상 명령으로 삼으며 최대 다수의 소비자를 추구한다.

부르디외의 장이론은 문화를 무엇보다도 상징권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즉 온갖 상징 형식 ─ 언어, 문학, 예술, 과학, 종교 등 ─ 의 총체로서 문화는 의미와 지식 생산을 매개로 사람들의 세계상과 실재 구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상징권력은 사람들에게 사회 세계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부과한다. 또 어떤 대상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사회 세계가 언제나 객관적 실재와 주관적 실재의 변증법적 구축 과정을 통해 현전하는 것이라면, 상징권력은 한마디로 ‘세계 형성의 권력’인 셈이다.

상징권력의 견지에서 문화를 본다는 것은 그러므로 지배 체제를 존속시키려는 세력과 변혁하려는 세력 간에 상징 형식들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지는 전선으로 문화를 인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문화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지배질서를 구조화하는 상징적 층위로서 문화를 분석하는 한편, 그것이 인간 이성과 감수성의 결정체로서 역사적 보편성을 띤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문화는 언제나 억압적인 동시에 해방적인 양면성을 지닌다. 그것은 가장 미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권력이 행사되는 현장이자, 자유와 진보의 잠재력을 배태한 저장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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