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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성균관대로… 교수사회 변화의 신호탄
서울대에서 성균관대로… 교수사회 변화의 신호탄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4.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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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임용제도 변화 - 늘어나는 스카우트제도

교수로 임용되고 나면 정년이 될 때까지 한 대학에서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이 과거 교수사회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교수임용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몇 년전부터 더 나은 교육·연구 환경을 찾아가는 교수들의 자발적인 이동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대학이 나서 우수교수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대학사회에서 넘어야 할 벽도 적지 않다. 앞서 교수를 스카우트한 대학들의 추진과정과 이를 둘러싼 교수사회의 시각을 따라가 봤다.   
 

박준용 교수. 미국 코넬대, 캐나다 토론토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뒤, 1992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직해온 그는 올해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교수들이 1년에 한편도 쓰기 어렵다는 SSCI 등재 학술지에 최근 5년 동안에만 10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한 박 교수는 관련분야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낸 연구자다. 그는 1994년 한국경제학회 청람학술상, 2001년 서울대 상과대학 ‘올해의 교수상’을 받았고, 1999년에는 예일대 경제학과에서도 ‘올해의 교수상’을 받았다. 이처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아 온 박 교수가 연구년을 맞아 미국 리츠대 초빙교수로 있다가 서울대가 아닌 성균관대로 귀국한 것이다. 박준용 교수뿐만 아니라 대수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채동호 교수도 이번 학기에 서울대에서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겼다. 반대로 행정학 전공의 이승종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서울대로 소속을 바꿨다. 그러나 이승종 교수와 박준용 교수의 자리바꿈은 성격이 다르다. 이승종 교수가 공개채용을 통해 임용됐다면 박준용 교수는 성균관대의 적극적인 스카우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준용 교수 임용에 성균관대는 공채 공고도 내지 않았다.    

학과경쟁력 제고 위해 스카우트제도 도입  

교수 스카우트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점차 늘고 있다. 과거 대학을 새로 설립하거나 학과를 신설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 실시하던 교수 스카우트를 학과경쟁력제고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가 지난해 ‘2004년 상반기 신임교수 초빙공고’를 내면서 철학, 생화학, 법학 분야 등을 특별채용으로 명시해 공개적으로 지원서를 받지 않고 특정교수를 임용했다. 또 건국대, 고려대, 한양대 등의 대학들도 내부적으로 타 대학이나 해외에서 저명한 연구자를 물색해서 교수자리를 채웠다.

특정학과를 육성하겠다는 대학들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법학분야는 전문대학원제로 제도개선이 논의되면서 이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들이 해당전공 교수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관련 학회에서는 교수들의 대학이동정보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과기부에서 나노펩을 만들고, 산자부도 나노클라스터를 지원하는 등 나노 분야에 연구비가 대규모로 지원되면서 대학들이 이를 유치하기 위해 관련 전공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한 대학은 나노 분야의 정부지원 프로젝트를 유치하기 위해 연봉 2억원을 제시하면서 저명한 교수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과, 대학본부, 해당교수 3박자 맞아야 가능

교수 스카우트는 내외적으로 삼박자가 맞아야 성사된다. 우선 학과 내부의 합의. 신진 교수가 아닌 중견학자를 초빙하는 것이다 보니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자”는 학과 교수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다. 학과교수 가운데 한명이라도 특정인을 생각하고 있다면, 또 교수들이 학과 내 서열관계를 중시한다면 스카우트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는 1999년부터 대학에서 실시한 학과 특성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왔고, BK21사업에 참여하면서 대학원을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교수들 사이에서 자리잡아왔다. 또 한달에 두 번씩 학과세미나를 열었던 것이 의견조율의 윤활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대학의 의지다. 학과에서 우수 교수를 초빙하겠다는 의사를 가졌더라도, 정실인사를 이유로 대학이 거부하면 애써 이뤄놓은 학과교수들의 합의도 물거품이 된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학과 교수들이 중견급 교수를 영입하겠다고 합의를 했지만, 대학본부가 난색을 표명해 추진하지 못했다. 공채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는 교수임용제도에서 불공정 시비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교수를 스카우트 하려면 이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의 재정이 넉넉지 않으면 다시 한번 장벽에 부닥치게 된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인사권을 주는 등 행정적 지원도 높은 연봉 못지않게 ‘당근’이 되기 때문이다.

학과에서 합의하고 대학에 신청하는 것과 반대로 최근에는 대학차원에서 아예 스카우트 할 교수의 업적 기준, 대우 조건 등을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학과의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성균관대, 연세대가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건국대도 건국 르네상스운동을 벌이면서 국내외 우수학자를 영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상태다.

학과의 의견조율과 대학의 결정이 이뤄지면 학과교수들을 중심으로 해당교수들에게 접촉한다. 이 경우 대부분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친분관계가 있는 교수들이 전령으로 나선다. 일정정도 의사타진이 이뤄지면 대학본부나 인사책임자가 적절한 스카우트 조건을 가지고 해당 교수와 조율에 들어간다. 그러나 해당 당사자가 옮길 마음이 없으면 이러한 노력도 허사다.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욕심

따라서 마지막으로 스카우트의 관건은 대상 교수의 이직 의사다. 더 우수한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수로서의 욕심, 우수한 연구자와 더 많은 연구비 지원 등 연구자로서의 욕심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교수의 연구역량이 뛰어난 데도 현재 소속된 대학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면 스카우트 대상 1순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교수 스카우트는 아직까지 한국대학사회에서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를 추진한 대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선 교수 스카우트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합의 할 수 있는 기준이다. 스카우트 대상 교수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는 비전공자도 수긍할 만큼 업적이 월등해야 가능하다. 문제는 인문사회계통의 경우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번에 스카우트에 성공한 성균관대의 경우 경제학, 수학분야에 SSCI, SCI 등 비교적 계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 다른 전공분야에서도 스카우트를 고려했지만 이러한 객관적 기준이 없거나 측정이 어려워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이공계는 SCI 등재 학술지 논문 수 등 비교적 객관적 평가가 수월하지만 연구에 필수적인 실험실이 걸림돌이 된다. 어렵사리 연구비를 유치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실험 장비를 꾸려놓은 교수가 이를 포기하고 다른 대학으로 옮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정부지원을 받는 경우 소속기관 변경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결국 소속변경을 해도 지원이 끊기지 않는 산학과제를 많이 하는 교수가 대학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된다.   

교수임용시장의 청신호

현재 교수들의 대학간 이동은 공채를 이용한 자발적 이동, 공채형식을 통한 스카우트, 전형적인 스카우트 등 세 가지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개채용을 통한 교수의 이동은 대학 서열화를 뚜렷하게 하는 부작용이 크다. 임용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타 대학에 원서를 내는 것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 눈총을 사는 것을 감수하고, 더 나은 연구, 교육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개채용과 스카우트를 접목한 경우도 마찬가지. 내부적으로는 임용을 하기로 약속하고 공개채용 공고를 낸 후, 특정인을 임용하는 경우에도 자리를 옮긴 교수는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이러한 공고에 원서를 내는 다른 지원자들은 결국 들러리가 된다.

반면 스카우트는 대학이 해당학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수교수를 유치하는 것이니 만큼 대학서열과는 반대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객관적인 기준이 제시된다면 교수임용의 투명성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폐쇄적인 학과에서는 불가능한 만큼 경직된 교수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스카우트를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재정지원이 필수라는 점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 시킬 수 있고, 또 교수가 떠난 대학의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다는 점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대학변화의 신호탄인 교수 스카우트가 얼마나 많은 대학에 확산될지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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