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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휴직', 교육의 질 저하 우려…"정계 진출시 사직해야"
장기 '휴직', 교육의 질 저하 우려…"정계 진출시 사직해야"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04.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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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출신 국회의원의 '휴직'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학기획 - 국회로 간 교수들

<편집자주> 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사에 목말랐기 때문일까. 이번 4·15 총선에서 교수 26명이 대거 국회로 진출했다. 교수 국회의원들의 전문적 지식과 도덕적 청렴함, 그리고 정치적 참신함에 대한 기대도 높다. 국회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일단은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입성의 기쁨을 언제까지 누릴 수는 없다. 국회의원이자 교수라는 이중적 직함에 스스로의 비전과 고민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수들이 4년이라는 '휴직' 기간 동안에 맞닥뜨리게 되는 첫 번째 질문은 명약관화하다. 여론은 완강하고 끈질기게 이들 교수 국회의원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왜 교수직을 버리지 않는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교수들은 임기 4년 동안 '휴직'을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직해야 하는가. 올해 4·15 총선으로 27명의 교수들이 대거 국회로 입성하자, 대학가에 이들 의원들이 남긴 공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무성해지고 있다.

이번에 당선된 교수출신 27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지금까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교수는 지병문 전남대 교수, 공성진 한양대 교수 등 13명. 총선 전에 휴직한 교수는 강창일 배재대 교수, 김재홍 경기대 교수 등 8명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수업을 맡고 있는 13명의 교수들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되는 오는 5월 30일 전까지 수업을 마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애실 교수(경제학과)와 김은영 교수(법학과) 등이 자리를 비우게 되는 한국외국어대는 "해당 교수들이 휴강없이 수업을 진행해온 데에다 과목을 폐강하는 것이 현재로선 불가능해서, 수업기간을 한달 여 앞당겨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교수 퇴직·충원 문제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호서대 관계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서상기 교수(신소재공학과)의 휴직과 관련, "비례대표여서 시험감독을 하는 등 지금까지 수업에 지장이 없는 상태지만, 5월 말에 휴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련 문제를 교원인사위원회에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건영 연세대 교수, 지병문 전남대 교수, 박형준 동아대 교수 등 나머지 교수들에게도 이같은 사정은 마찬가지.

각 대학들은 이번 학기에 진행된 수업은 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마무리지을 수 있지만, 대체 강사를 충원해야 하는 앞으로의 4년이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ㅅ대학의 한 관계자는 "법으로 교수들의 4년간 휴직을 허용하고 있어 대학차원에서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기간 동안 비전임교수로 강의를 대체해야 하는 등 동료교수, 학생, 대학원생들의 불만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재정상 인원을 늘려 신임교수를 뽑을 수도 없는 반면, 4년간의 교육 공백은 상상외로 크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특히, 국·공립대는 교수 TO를 국가가 따로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르게 선택할 여지도 없이 그 기간동안 강사들로 수업을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ㅇ대학의 한 학과장은 "국회가 전문적 지식을 지닌 교수들의 수혈을 받을 수 있게끔 한 법규이지만, 학과 운영의 측면에서 보면 해당 교수의 편익만을 제공할 뿐"이라면서 "국회로 나가는 공무원이 옷을 벗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수들의 퇴직도 상식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교수직에 사임을 표시한 의원은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뿐. 국회의원 임기 기간 동안에 정년을 맞는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과 홍창선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의 경우를 논외로 친다면, 김 교수의 사임 표명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교수측은 "지역의 시급한 현안에 총력을 쏟기 위해, 대학측에 5월 30일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며, 이후의 행정처리를 대학측에 맡겼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수의 퇴직여부를 대학의 정책방향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의원도 있었다.

이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교수의 정계진출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교수들이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면서 "거취 문제는 학교의 정책방향이 정해지면 그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교수든 국회의원이든 전문적인 시각에서 입법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수들의 정계 진출과 관련,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국회의원들에게 당선되자마자 대학에 사표쓰고 당장 나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래동안 대학에 자리를 비워둘수록 학과 교육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생각해서, 사표를 언제 써야할지의 여부를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에 서울대 정치학과는 교수들의 정·관계 진출이 잇따르자, 교수 성명서를 통해 "교육공무원 이외의 공무원에 임용된 교원은 마땅히 사직해야 한다"라면서 "전임교원에 임용되지 못한 박사학위소지자가 적체된만큼 휴직상태로 장기간 자리를 비워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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