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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58] 잎이 달린 식물이 지네를 닮은 지네발란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58] 잎이 달린 식물이 지네를 닮은 지네발란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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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자 중앙일보 ‘한 컷’ 란에 멋진 생물 한 점이 눈을 끌었다. “제주도와 전남 일부 지역에만 자생(自生)하고, 바위에 붙어살아서 발견이 쉽지 않은 지네발란(Sarcanthus scolopendrifolius)의 새로운 대규모 자생 군락지를 전남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발견했다"라고, 처음 보는 희귀한 사진 밑에 마음 설레게 하는 설명을 달았다.

지네발란은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본종은 분포지가 매우 좁아서 한국에서 제주 서귀포시 지역을 제외하면 전남의 유달산과 일부 도서지방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그중 서귀포시 안덕 계곡의 자생지는 국내 최대라 한다. 또 전라도 나주를 최북단 한계로 전라남도와 제주도 등 온난한 지역에 생육하고, 세계적으로는 일본의 간토 지방 서부와 중국의 푸젠성 서북 동부, 저장성 동부에 분포한다.

지네발란은 상록다년초(늘푸른여러해살이풀)인데‘지네난초’라고도 한다. 햇볕이 잘 드는 바위벽이나 나무에 붙어살고, 작고 통통하게 생긴 잎이 두 줄로 어긋나는데, 벌건 줄기에 잎이 달린 식물이 다리가 많은 지네를 닮았다. 줄기는 약 20cm이고, 단단하며 가늘고 길다. 드문드문 곁가지가 갈라지고, 여기저기에서 잎보다 굵고 긴 뿌리를 내리는 다육성(多肉性)난초이다.

똥똥한 잎은 가늘고 길며, 끝이 뾰족하고, 중간쯤부터 아래쪽이 약간 볼록한 모양인 바소꼴(피침형, 披針形)로 길이 6∼10mm이다. 또한 잎은 가죽처럼 단단하고 질긴 가죽 같고, 겉면에는 홈이 있으며, 잎을 싸는 잎집은 줄기에 착 달라붙는다. 

지네발란은 7~8월에 분홍색의 작은 꽃이 핀다. 꽃은 잎집을 헤치고 나오는 꽃대 끝에 1개씩이 달린다. 위쪽의 꽃잎은 꽃받침과 비슷하지만 약간 짧고 옆으로 퍼진다.

그런데 난과 식물은 외떡잎식물이고, 외떡잎식물은 꽃잎이 3의 배수인지라 지네발란의 꽃이 3장의 꽃잎과 3장의 꽃받침으로 이뤄져 있다. 꽃잎과 꽃받침은 생김새가 거의 같고, 입술꽃잎(순판,脣瓣,labellum)이라 불리는 가운데 꽃잎은 종마다 생김새가 매우 특이하다.

그런데 입술꽃잎은 좌우 대칭인 꽃 가운데 꽃잎이 위아래 두 쪽으로 나뉘어 입술 모양으로 된 꽃잎인데, 지네발란의 입술꽃잎은 아래쪽으로 부푼 모양이고, 거기에 꿀주머니가 있다. 입술꽃잎은 3갈래로 갈라지며, 곁갈래 조각은 귀처럼 생기고, 가운데갈래 조각은 세모진 달걀 모양으로서 끝이 뭉툭하고 희다. 열매는 길이 6∼7mm 정도로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도란형,倒卵形)이다. 그리고 익으면 열매껍질(果皮)이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삭과이다. 곤봉처럼 생긴 지네발란의 열매는 8월에 익으며, 속에 먼지처럼 작은 씨앗들이 가득 들어 있다. 모든 난과 식물의 씨앗은 발아할 때 영양분을 공급하는 배젖이 없는 탓에 발아율이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다. 번식은 포기나누기(그루가르기,分株)로 하며, 난에 미친 애호가들이 관상초로 많이 심는다. 

그리고 지네발란은 안개나 해무(海霧)가 자주 발생하고, 햇볕이 알맞게 들며,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의 바위나 나무에 착 붙어 자란다. 이처럼 나무나 바위에 뿌리를 펼치고 사는 난초를 착생란(着生蘭)이라고 한다.
착생란의 뿌리는 두껍고 굵으며 속이 빈 갯솜(海綿) 모양의 세포(spongy cell)가 여러 겹의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이러한 뿌리는 많은 양의 수분을 흡수하여 저장할 수 있다. 착생란이 건조한 암석이나 나무의 표면에 붙어살 수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착생란 종류는 습도가 높은 곳을 선호하지만 지나치게 물기 많은 습윤(濕潤)한 곳에서는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한다.

지네발란은 자생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불법채취와 기후변화, 생육지의 환경 변화 등으로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 한다. 아무튼 지네난초가 그렇게 귀한 종인 줄 미처 몰랐다. 2004년 11월 12일, ‘한국 난초 시리즈(Korean Orchid Series)’ 우표에  실린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지네발란은 다른 멸종 위기의 난보다는 비교적 많은 개체군과 개체 수가 분포하는 편이다. 하지만 난과 식물은 약용 또는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아 세계적으로 불법채취와 밀거래가 끊이지 않아 심각한 멸종 위기에 놓인 종이 많다 한다. 그래서 모든 난과 식물은 ‘워싱턴 협약’이라고 불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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