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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소수 활동가들의 독점영역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소수 활동가들의 독점영역 아니다”
  • 이창남
  • 승인 2020.11.0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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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회 참관기_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
배춘희,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306쪽

할머니들 사후에 과연
위안부 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진영 논리로 할머니들 규정 안 돼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2020년 8월 28일 출간)는 중국에서 위안부로 있었던 배춘희 할머니의 구술 증언을 박유하 교수가 채록하고 정리한 책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정대협 비판과 더불어 위안부 관련 활동들을 재고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서평회가 지난달 30일 대한출판문화원에서 열렸다. 패널로는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와 강제동원 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정혜경 선생, 심규선 전 동아일보 대기자와 마이니치 신문 서울 지국장 호리야마 아키코 기자가 참여하였고, 온오프라인으로 국내외에서 접속한 참가자들과 함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지난달 30일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에 대한 서평회가 열렸다.
할머니들 사후에 위안부 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문제 의식이 제기됐다. 사진 = 이창남 교수

 

 

우선 책에 대한 패널들의 논평이 있었다. 정혜경 선생은 구술사 연구자로서 주로 구술과 증언의 차이를 논했고, 구술의 경우 구술자가 위치한 맥락을 고려해서 증언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측면을 지적하였다. 특히 배춘희 할머니와 다른 할머니들의 관계를 포함하여 지원단체와의 관계 등이 배춘희 할머니의 구술을 이해하는 데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탈맥락화된 증언들과 자료들이 상황을 왜곡하기도 했던 점을 고려할 때 배 할머니 뿐만 아니라 기존의 증언들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술은 맥락과 관계에서 해석 

 

심규선 대기자는 현재 이루어지는 위안부 관련 지원단체들의 운동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주로 논평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는 일부 모호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는 주로 위안부 피해자와 운동단체의 주장들이 서로 상충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 관점을 채택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그는 일본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관행도 반성적으로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일본을 유리하게 하면 안 된다’거나 ‘일본을 비난하는 단체를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오랜 보도 관행으로 작동해왔다. 실제로 일본에 관한 상당수의 기사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런 두 가지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정의연과 나눔의 집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금 유용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국내 저널리즘의 양상과는 상당히 차별적인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아키코 기자는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할머니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모욕이나 부적절한 대우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호하는 조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배춘희 할머니의 증언에서도 나타나듯이 할머니는 계속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기도 하고, 감시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외부인과 자유롭게 전화로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2014년의 이 기록들을 정작 국민들이 공식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20년이다. 그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지원단체의 문제에 대한 이용수 할머니의 공개적인 비판과 더불어 비로소 우리 사회는 뒤늦게 이러한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키코 기자는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베를린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과 관련하여 ‘이용수 할머니의 정대협 비판이 일본 우파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로 피해자 할머니에게 직접 면박을 주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진정어린 고백을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을 뿐더러 유리한 것들만 취사 선택해서 자신들의 운동에 복무하게 하려는 태도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피해자와 에이전시(지원단체) 사이에 나타나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번 서평회가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피해자와 지원 단체 사이의 모순

 

이어서 박유하 교수가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였다. 이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배 할머니는 지원단체가 할머니들을 이용하려 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 둘째, 배 할머니는 위안부를 성노예가 아닌 일종의 군속으로 이해하고 있다. 셋째,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익명의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법적배상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상의 사안들은 그동안 위안부에 대한 이해와 그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의 주요한 쟁점이 되어왔던 것들이다.

 

‘또 하나의 목소리’라고 명명되었지만 박 교수에 따르면 기존의 다른 분들의 증언에서도 배 할머니의 증언과 유사한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대중적으로 인지되고 있지 않고, 상당부분 활동가 에이전시에 의해 위안부의 존재와 이들의 요구가 사후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배춘희 할머니는 ‘공식사죄와 법적 보상을 원했다’는 대리인 복화술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책 속의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와는 다른 것이었고, 자신이 머물던 나눔의 집에서 “춥다 ... 이제 떠나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참가자 전체토론은 위안부 할머니들 사후에 운동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특히 이용수 할머니의 정대협 비판과 제3의 목소리를 확인한 위안부 운동은 어떻게 바뀌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이제 위안부 관련 활동은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중대한 갈림길에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패널들과 참가자들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구술증언에서 나타나듯이 배춘희 할머니는 성노예나 매춘과 같이 진영논리에 따라 당신을 규정하던 말들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그것은 비루했던 역사를 견뎌오면서도 그 과거를 향해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미는 인간적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신을 덮고 자신들의 정치적 역사적 입장을 역사의 뒤안길을 가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강박하는 위안부 운동은 누구를 위한 운동인지 되물어야할 것이다. 국민적이고 국가적인 사안으로 확대된 위안부 문제가 소수 활동가들의 독점영역이라는 폐쇄적 의식도 버려야할 것이다. 한일간의 갈등을 극화해온 위안부 관련 사안은 이제 방치하거나 왜곡하기 보다는 그 해법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할 때이다. 이를 위해 그 사안에 대한 고통스러운 재인식을 이 책은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이창남 경북대 교수·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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