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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 교수신문
  • 승인 2020.11.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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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지음 | 돌베개 | 864쪽

250여 년 전 조선 선비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장장 6개월에 걸친 북경 여행길에 오른다. 일평생 조선을 벗어나지 못했던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세계 문명의 중심지 북경을 관광한다는 것은 이루기 힘든 꿈이었다. 홍대용은 천금 같은 기회를 얻어 북경을 다녀왔고, 자신의 진기한 견문을 『연기』(燕記), 『간정필담』(乾淨筆譚), 『을병연행록』이라는 3부작의 여행기에 담아 세상에 전했다.

북경 여행기를 통해 홍대용은 전성기를 누리던 건륭제 치하 청 제국의 발전상을 꼼꼼히 관찰하고 생생하게 보고했다. 아울러 항주(杭州, 현 저장성 항저우시) 출신의 비범한 세 명의 선비인 엄성(嚴誠)·반정균(潘庭筠)·육비(陸飛)와 나눈 학문적 대화를 『간정필담』에 소개했다. 그리하여 그의 여행기는 당대는 물론 19세기 이후에도 널리 읽혔고, 김창업의 『연행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연행록(燕行錄)으로 손꼽혔다.

홍대용의 북경 여행은 그의 삶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그의 주위에 모여든 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 오늘날 ‘북학파’(北學派)라 일컫는 인사들에게도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쳐 ‘북학사상’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북학파 인사들은 홍대용의 여행기를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자극 받아 잇달아 북경 여행에 나섰고 『북학의』 『열하일기』 등의 빼어난 저술을 통해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고 역설했다.

이렇게 볼 때, 홍대용의 북경 여행기를 새로 읽는다는 것은 홍대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물론이요, 조선이 근대문명을 접하고 근대화로 서서히 첫발을 내딛던 시기 일군의 학자들 사이에서 구가되던 북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 된다. 하지만 종래의 연구에서는 홍대용의 사상 발전에 북경 여행이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작 그의 여행기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고 피상적인 논의에만 머물렀다. 이 책은 3부작 여행기 전부를 대상으로 하며(이본 포함) 면밀한 텍스트 연구를 기초로 해서 홍대용의 북경 여행기를 완전히 새롭게 읽었다.

한국사에서 근대를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250여 년 전 홍대용의 북경 여행은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청나라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굴기하고 서양 열강이 선교사를 앞세워 동아시아 침략을 개시하던 그 무렵, 조선에는 거대한 시대적 전환을 예감하고 그 대책으로 사회 개혁과 사상적 혁신을 고민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홍대용은 이 시기의 선각자 중 한 사람이다. 근대화의 여명기로부터 오랜 암중모색과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의 한국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홍대용의 북경 여행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현대 한국 사회의 형성 과정을 살피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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