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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와 개
떡갈나무와 개
  • 교수신문
  • 승인 2020.11.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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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크노 지음 | 조재룡 옮김 | 민음사 | 196쪽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자 실험 문학의 첨단에 섰던 레몽 크노의 『떡갈나무와 개』가 민음사 세계시인선 51번으로 출간됐다. 『떡갈나무와 개』는 그의 첫 시집으로, 작가가 이후 어떠한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갈 것인지 대표성을 선취했다.

크노는 시인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수학자, 화가, 출판인 등 다방면을 넘나들며 활동했고, 자신의 시대에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하나였다. 다양한 경험과 언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말놀이’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대담한 언어 실험과 문학 장르의 경계 넘나들기, 유머러스하고 서민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가 특유의 문장은 이미 여기 완성돼 있다. 또한 자전 서사와 정신분석이라는 틀을 이용해 고유하면서도 단일하지 않은 시적 자아를 확립하는 젊은 작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어린 시절부터 시와 소설, 일기 쓰기를 즐겼던 크노는, 20대 시절 앙드레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 그룹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러나 1931년이 되면 이들과 완전히 결별한 뒤, 자기 탐구의 길에 접어든다. 이에 따라 1939년까지 정신분석을 받는 한편, 민주공산주의 클럽에 가입하고, 기관지를 펴내고, 철학에 몰두하여 조르주 바타유, 메를로퐁티와 함께 알렉산드르 코제브의 헤겔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 모든 경험은 크노가 다시 새롭게 문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시켰고, 1937년 출간된 『떡갈나무와 개』에는 그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20세기 초 유럽은 기존의 세계가 종식된 후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임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혁신은 역설적으로 전통이 존재해야 가능했고, 크노의 문학적 실험의 근원 역시 전통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출발했기에 강력했다. 크노는 자전을 쓰는 데 있어 일부러 시로 쓴 소설, 즉 운문 소설이라는 형태를 차용했는데, 18세기 이후 소설이 산문 형태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쓰였던 전통적 형태다. 시를 활용하여 이야기의 형태를 갖추되, 시적이라고 여겨지는 ‘서정성’을 지웠다. 동시에 소설적이라 여겨지는 ‘일관된 주체의 내레이션’을 일부러 조각내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로써 사실과 허구, 시와 소설 등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오히려 이 모든 것의 섞임과 긴장으로 작품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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