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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청계천을 ‘重建’하자
교수논평-청계천을 ‘重建’하자
  • 홍순민 명지대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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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민 /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
청계천이 소란하다. 복원 공사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중에 이번에는 서울시장과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고발인들은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위원 또는 문화재 연구자 및 문화재 보호운동단체의 대표 5인으로 돼 있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의 핵심은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출토된 돌 15개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청계천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內四山―백악산, 타락산, 인왕산, 목멱산의 물줄기들이 모여들어 이루어진 서울의 內水이다. 서울 한 가운데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변은 당시 상인들과 평민, 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청계천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던 저장고이다.

1960년대 말 청계천을 덮어 고가도로까지 만든 것은 그 당시로서는 근대화, 산업화의 상징으로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서울을 수도로 정해 도시를 건설한 기본 개념, 곧 자연과 인공의 조화,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울린 터에 그것을 다치지 않으면서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던 전통적인 정신을 부정한 것이었다. 오로지 편리만을 좇아 무지막지한 인공물로 도시를 뒤덮는 출발 신호였다.

이제 한 세대가 넘어 다시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환경을 복원하고,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겠다고 제시한 것은 원론에서는 동의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바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우선 공사부터 시작한 것은 너무 성급하다. 고가도로를 헐고, 복개도로를 걷어내면 그 속에서 몇백년 쌓여 온 흔적들이 드러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을 모르고 공사를 시작하였다면 무지요, 알면서도 공사를 강행하였다면 파괴 행위이다.

애초에 ‘복원’은 불가능하다. 복원이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뜻이라면 그 원래가 언제 어떤 모습인가. 애초의 구불구불한 자연하천인가. 태종 연간에 이를 직선화한 開川인가. 영조 연간에 준천을 한 뒤의 모습인가. 서울이 일본식 도시로 바뀐 일제 강점기의 모습인가. 아니면 60년대 말 복개하기 직전 판잣집들이 빼곡하던 모습인가. 이제 서울에 천만이 넘는 인구가 모여 사는 터에 그 어느 것으로도 되돌릴 수도 없으며 되돌릴 필요도 없다. 복개에 고가도로 이중으로 덮여 죽은 상태의 청계천을 되살린다면 복원이 아니라 重建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옛 정신과 모습을 최대한 살리되, 오늘날의 조건에 맞게 새로 만들 수밖에 없다.

중건을 위해서는 애초의 정신이 무엇이며 거기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하며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사하기 전, 설계 단계부터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일을 담당한 쪽에서는 그것이 귀찮고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할지 모르나, 공사와 발굴 작업이 뒤섞여 혼란을 일으키고, 최고 책임자가 고발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다.

일을 담당해 추진하는 주체로서 서울시 및 추진본부와 실제 공사를 수행하는 업체들,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청, 그리고 사계의 전문가 및 시민단체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 시스템은 겉모양은 갖춘듯하나 실제로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라진 돌 15개가 그것을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셈이다.

우활한 원칙론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결자해지다. 문제가 드러난 이 때 추진 주체 측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스스로 정한 짧은 기간 안에 결말을 보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또한 현대식으로 완전히 바꾸겠다는 것도, 온전히 옛 모습으로 되돌리자는 것도 모두 욕심이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우리가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후세에 넘겨줄 것은 넘겨주면 서로 좋다. 우선 물이 흘러가고, 사람들과 차들이 다닐 수만 있어도 충분하다. 복원이 아니라 중건을 한다고 방향을 전환하되, 중건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좀더 중지를 모았으면 좋겠다. 환경이나 역사 문화를 되돌리는 손길은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다. 떨리는 섬세함과 지루할 정도로 오랫동안 가다듬는 손길이라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주며, 그 감동이 오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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